올해 활활 타올랐던 기업공개(IPO) 시장의 분위기가 최근 급격히 식었습니다. 지난달 시몬느액세서리컬랙현이 상장을 철회했었죠. 심사를 통과해놓고 상장을 포기한 것은 올해 시몬느가 처음입니다. 그 뒤로도 에스엠상선이 상장계획을 접었는데요. 두 기업 모두 4분기 IPO 시장 최대 기대주였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시장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구주매출 비중이 너무 높아서 그렇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구주(舊株)는 말 그대로 이미 발행된 주식입니다. 보통 상장은 기업이 신규 투자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하죠. 그래서 주식시장을 전문용어로 직접금융시장이라고 합니다. 신주를 찍은 뒤 팔아서 필요 자금을 조달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야 회사에 새 돈이 들어와 자본금으로 쌓이니까요.
한데 대주주 처지에서 이게 맘에 안 들 수 있습니다. 이득 볼 게 없으니까요. 이 돈 저 돈 끌어다 사업을 벌여 결국 성공시켰는데, 자기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없고 지분율만 희석되기 때문입니다. 상장의 교과서적인 이유가 신규 투자금 유치라면, 대주주가 투자한 돈을 회수하는 것은 현실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주와 구주를 적절히 섞어서 공모시장에 팔게 되는 겁니다.
문제는 구주매출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다는 겁니다. 여태껏 그래왔는데요. 기존 주주 배만 불린다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달 상장한 케이카도 이런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케이카의 100% 주주는 한앤컴퍼니였습니다. 공모를 통해 파는 주식이 1,346만 주였죠. 이 중에 한앤컴이 주인인 주식이 91%인 1,226만 주, 신주를 발행해서 파는 주식이 9%인 120만 주였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공모를 통해 판 주식으로 3,370억 원을 벌었는데. 이중의 한앤컴이 3,065억을, 나머지 305억을 케이카가 가져간다는 뜻입니다. 결국 청약은 흥행하지 못했죠.
상장에 실패했던 에스엠상선도 같은 지적을 받는 겁니다. 시몬느의 구주매출 비중을 80%, 에스엠상선은 50%였습니다.
구주매출 비중이 높은 게 문제라면 제도로 막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딱 잘라서 얼마나 적당하다고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래소도 주식과 관련해선 분산 요건만 보는데요. 대략적으론 이렇습니다. 공모로 파는 주식이, 그리고 공모 이후 일반주주가 보유하는 주식이 전체의 25%이거나 혹은 500만 주를 넘어야 합니다. 자기자본이 500억 이상인 기업은 공모주식 비율이 10% 이상이면 됩니다. 일반주주 숫자도 700명보다 많으면 되죠.
주주 분산 요건을 왜 있을까요. 일반주주가 적으면 상장 이후 최대 주주가 주식을 팔면 주식이 크게 출렁일 수 있겠죠. 적당히 주식이 분산돼 있어야 이런 충격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상장 때 기관투자자나 최대 주주의 주식을 일정 기간 팔지 못하도록 하는 보호예수 제도란 게 있죠. 비슷한 취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 보니 구주매출 비중이 100%였던 기업도 있습니다. 2014년 상장한 쿠쿠전자가 주인공인데요. 공모 물량이 모두 사주 일가 소유 주식이었습니다. 공모가 흥행했을까요? 기관 수요예측이 600대1, 일반 공모 청약경쟁률이 175대 1이나 했습니다. 구자신 회장의 둘째 아들인 구본진 씨는 주식 반을 팔아서 1,500억을 벌어서 관심을 모았었죠.
구주매출이 100%여도 공모가 흥행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인데요. 이미 쌓아놓은 현금이 많은 경우입니다. 쉽게 말해 잘나가는 기업이겠죠. 굳이 신주를 발행해서, 즉 지분율을 희석하면서까지 대주주가 돈을 빌릴 필요가 없는 겁니다. 장래가 밝은 만큼 공모가격이 비싸도 투자자들이 몰리게 되는 거죠.
5월 상장한 SK아이테크놀로지도 구주매출 비중이 60%로 높았습니다. 하지만 청약증거금만 81조 원을 모았죠. 복수 청약이 가능하게 제도가 바뀐 직후이긴 하지만, 여하튼 역대 1위 기록입니다.
그렇다면 구주매출이 ‘제로(0)’면 마냥 좋을까요. 물론 대부분은 좋습니다. 이달 코스닥에 상장한 엔켐이라는 기업이 그런데요. 장래도 밝았지만, 구주매출도 없어서 꽤 흥행했죠.
하지만 이런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최대 주주가 공모 때 주식을 하나도 팔지 않았다. 그 말은 상장 이후 주식시장에서 꽤 많은 양의 주식을 팔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주가가 내려가면 그 피해는 일반 주주들에게 돌아갈 테죠. 모든 기업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겁니다.
물론 거래소가 구주매출 비중에 개입하는 예도 있긴 합니다. 정성적 심사 단계에서인데요. 최대 주주의 지분율이 낮거나, 구주매출로 너무 많은 주식을 팔아서 경영권이 흔들리게 되는 경우입니다. 기업의 기초체력과 상관없이 주가가 오르내리면 일반 투자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준은 상장 이후 일반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느냐 마느냐인 거죠.
드물지만 거래소가 경영안정확약서라는 것도 받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죠. 사모펀드가 최대 주주라고 해보죠. 사모펀드는 투자부터 회수까지 기한이 정해진 블라인드 펀드를 통해 기업을 사들입니다. 그렇다 보니 상장 이후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면 지분을 쪼개 팔 수도 있는 거죠. 확약서는 그렇지 않겠다고 해당 최대 주주에게 확약을 받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시몬느나 에스엠상선도 구주매출 비중이 높아서 상장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죠. 시몬느는 마크 제이콥스나 코치 등 준명품 브랜드에 가방 완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기업입니다. 최근 패션 시장은 명품이나 패스트패션으로 양분됐죠. “애매하다”라는 게 기관투자자들의 평가였습니다. 그래서 수요예측에 실패했고, 공모가를 낮추는 게 아니라 상장 일자를 미루는 선택을 했다는 거죠. 심사보고서 통과 이후 6개월 안엔 다시 상장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에스엠상선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당시 공모가격은 희망 밴드 하단인 1만8,000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비교군인 HMM이 전환사채 전환 이슈로 주가가 너무 바닥이었죠. 이 공모가로도 수요예측이 실패했죠. 공모가를 이 보다 낮추면 대주주가 회수할 수 있는 돈도, 회사에 들어오는 신규 자금도 쪼그라들죠. 그래서 역시 상장 시기를 바꾼 거죠.
문제는 안 되지만, 투자자들이 문제 삼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최근 IPO 시장 상황과 맞닿아 있는 내용인데요. 우선 올해 IPO 시장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 상장 기업이 공모시장에서 조달한 금액이 18조 원가량입니다. 지난해 5.9조에 비하면 3배에 달하죠. 지난 20여 년을 훑어보더라도 올해보다 뜨거웠던 적이 없습니다.
한데 4분기 들어서 분위기가 급변했죠.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이 따지는 조건이 그만큼 많아졌고, 이제는 구주매출 비중까지 따지게 됐다는 겁니다. 우리가 투자했는데 그 돈을 기존 주주가 가져가면, 도대체 소는 뭐로 키우란 말이냐. 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죠.
8월 상장한 롯데렌탈이 반면교사가 되고 있습니다. 공모가가 5만9,000원으로 꽤 높았었죠. 구주매출도 50%였습니다. 한데 크게 흥행했죠. 수요예측 경쟁률은 217대1, 청약경쟁률은 65대1이었습니다. 지금 주가는 3만8,000원 선을 오르내립니다. 주가가 30% 넘게 빠졌다는 거죠. 이렇다 보니 이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자 뭐 이런 분위기가 IPO 시장에 만연해 있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