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속세를 부과하는 방식을 현재 유산세 방식에서 유산취득세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한 끝에 중장기 과제로 남겨뒀습니다. 내년 세법개정안을 논의하는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가 열리기 직전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밝힌 것으로, 당장은 현행 상속세 체계가 유지될 전망입니다. 상속세율 조정이나 기업 가업승계 공제의 확대 같은 주요 사안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 의견을 냈습니다. 세수가 줄 가능성도 크고 부의 재분배 기능이 떨어진다는 게 주된 이유입니다.
◇ 정부 상속세 개편 중장기 검토‥사실상 다음 정권으로 넘겨
현재 상속세는 상속인의 재산총액에 누진세율을 곱해 부과하는 방식입니다. 물려주는 재산이 많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구조입니다. 작년 사망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남긴 재산이 약 26조원인데, 부인인 홍라희 여사와 이재용 부회장 등이 12조원 가량의 상속세를 부과한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현재 방식은 납세자의 능력만큼 세금을 부과한다는 응능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물려준 재산에 부과하기 때문입니다. 또 받는 만큼 세금을 내는 증여세 체계와도 맞지 않습니다. 상속과 증여세 부과 체계가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논의한 것이 유산취득세입니다. 개인이 상속받은 재산만큼 세금을 매기자는 게 유산취득세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상속받는 사람이 많으면 개인별 과세표준금액이 줄게 됩니다. 즉 상속세가 줄어드는 효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정부는 현 상속세(유산세)체계를 유산취득세로 바꾸면 부의 재분배 효과가 떨어질 것으로 봤습니다. 현재 상속세는 소득세의 보완재 역할을 합니다.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안 냈거나 혹은 못 낸 소득세를 청산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유산취득세로 바꾸면 상속받는 사람의 부담이 줄어들 테니 재분배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입니다.
또 조세 회피 우려도 커진다는 걱정을 합니다. 상속받는 사람을 늘리면 충분히 세금을 줄일 수 있습니다. 상속인 한 명의 재산만 파악하면 되는 구조에서 상속 받는 모든 사람의 재산을 파악하는 것도 세무 행정 측면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나라마다 다른 상속세
상속세의 형태는 나라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선진국 클럽인 OECD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를 매기는 국가는 23개 정도입니다. 이 가운데 19개국은 유산취득세를 부과하고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4개국 정도만 유산세 방식으로 과세합니다.
상속세 대신 자본이득세를 부과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호주와 캐나다입니다. 부모가 상속한 재산을 자녀에게 팔았다는 전제로 세금을 매기자는 겁니다. 캐나다는 일단 상속을 받은 시점 가격에서 취득가격을 뺀 뒤 자본이득세를 부과합니다. 나중에 이 자산을 팔 때에도 매각가에서 상속가액을 뺀 금액에 자본이득세를 매깁니다. 호주는 상속시점에는 과세를 하지 않다가 매각 시점에 취득가액을 빼서 세금을 부과합니다. 모두 상속인의 양도차익에도 과세를 하는 것입니다. 상속인의 양도차익엔 별다른 과세를 하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습니다.현재방식의 유산세보다 유산취득세가 세금 부담
현재 상황에서는 유산취득세가 대체로 유산세보다 세부담이 적지만 반대의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상속에게 유산을 물려받았을 때가 그렇습니다. 상속재산을 전부 합해 누진세율을 적용해 과세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집에 자녀가 많아야 한 두 명인 시대에는 설계 방식에 따라 되레 유산취득세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상속세 변경 요구는 커질 듯
상속세 변경 요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상속세 부과 대상이 확 늘어날 수 있어서입니다.
현재 매년 재산 상속을 받는 사람이 약 35만명쯤 됩니다. 이 가운데 상속세를 내는 사람은 1만명(2.9%) 수준입니다. 명목 세율은 최대 50%이지만 각종 공제를 뺀 실효 세율은 0.55~35% 정도입니다. 웬만한 고액 재산을 물려받는 자산가가 아니면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자산 가치가 급등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2채 정도 보유하고 있다면 상속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실제 지난 2016년 약 2조2천억원 정도이던 상속세 작년에는 4조2천억원으로 늘었습니다.
중산층까지 상속세 부과 대상에 포함할 경우 조세 저항이 불가피할 수 있습니다.
국책연구원인 조세재정연구원은 "상속 증여의 과세대상을 과거 기준과 유사하게 고자산가로 타깃하기를 원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붙이며 “물가 상승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연구 용역 보고서를 최근 기획재정부에 낸 이유입니다. 상속세=부자세라는 지금까지의 공식을 유지하려면 공제 대상을 늘려 과세 대상을 줄여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기획재정부는 현재 과표나 공제 제도 등이 현행 상속세를 기반으로 매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전반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