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줄이고, 적용 대상 차종의 가격 기준을 낮추는 잠정안을 내놨습니다. 자동차 제조사들도 이 기준에 맞춰 신차 가격을 조정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는데요. 당장 ‘쌍둥이 차’로 불리는 아이오닉5와 EV6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이오닉5가 날벼락을 맞았는데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우선 환경부가 내놓은 잠정안의 골자는 1)최대 800만 원인 국고보조금을 700만 원(아직은 미확정입니다)으로 내리고 2)보조금을 100% 받는 대상 차량의 가격 기준도 6,000만 원에서 5,500만 원으로 낮추는 겁니다.
문제는 가격 기준이 낮아진 거 때문에 벌어졌는데요. 국내 전기차 쌍두마차가 현대차의 아이오닉5와 기아차의 EV6입니다. 두 차는 현대기아차가 E-GMP라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개발 이후 내놓은 첫 전기차입니다. 재원도, 가격도 비슷합니다. 올해 출시된 뒤 모든 ‘트림(세부 모델명)’을 전기차로 인증을 받았습니다. 보조금 기준이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EV6는 전 트림이 보조금 100% 지급 대상입니다. 하지만 아이오닉5는 최고사양 트림의 보조금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게 됩니다.
왜 이렇게 될까요. 심지어 최고사양의 모델은 EV6가 아이오닉5보다 더 비쌉니다. 처지는 ‘옵션(선택 사양)’에서 갈렸습니다. 전기차 보조금 인증 시스템은 이렇습니다. 일단 정부가 보조금 정책을 세우면, 제조사는 거기에 맞춰서 전기차 권장소비자가격을 결정합니다. 이때 권장소비자가격은 트림별로 모두 다른데요. 전기차를 예로 들면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짧은 스탠다드형, 주행거리가 긴 롱레인지형 이렇게 구분하죠. ‘휠(바퀴)’의 크기나, 2륜이나 4륜인지에 따라서도 나뉘기도 하죠. 옵션이 얼마나 들어가는 지도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EV6는 6개의 트림으로 판매를 하고 있죠. 권장소비자가격은 옵션 대부분을 뺀 이른바 ‘깡통 옵션’을 기준으로 정했습니다. 반면 아이오닉5는 7개 트림으로 나눴는데요. 이중 최고사양 트림은 소위 말해 ‘풀옵션’ 차량입니다. 바퀴도 20인치인데요. 이 트림의 권장소비자가격이 5,500만 원을 넘습니다. 줄일 수도 없죠. 이미 이렇게 인증을 받아놨기 때문인데요. 쉽게 얘기를 하면 EV6는 최고사양이어도 옵션을 줄이면 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는데, 아이오닉은 이게 안 돼서 보조금을 50%만 받을 수 있다는 거죠.
앞서 아이오닉5와 EV6는 쌍둥이 차라고 했죠. 계열회사이긴 하지만, 아이오닉5 최고사양 살 사람이 EV6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겁니다. 현대차 입장에선 좋을 리 없는 변화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내년에 아이오닉5의 연식을 변경할 땐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최고사양 트림의 휠을 19인치로 바꾸는 등 옵션을 바꾸면 되기 때문인데요. 그때까지는 이 문제를 떠안고 가야 합니다.
가격 차이가 얼마나 날까요. 일단 국고보조금만 놓고 보면 350만 원 차이가 납니다.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더하면 더 많이 나는데요. 서울(200만 원)을 기준으로 하면 추가로 100만 원 더 차이가 벌어지죠. 지자체의 경우 1,100만 원을 주는 곳도 있습니다. 차이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죠.
현대차는 이 문제만 있는 게 아닙니다. 프리미엄 라인인 제네시스에서 전기차 GV60을 출시했죠. 지금 계약해도 1년 뒤에나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보조금 100%를 받기 위해 기본사양의 권장소비자가격을 5,990만 원으로 맞췄는데요. 이제는 보조금을 100% 받을 수 없게 된 겁니다.
이미 구매한 분들도 보조금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통상 전기차 보조금은 신청이 접수된 이후 3개월 안에 차를 인도받아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기한을 넘어서면 자동으로 취소가 되는데요. GV60은 인도까지 1년이나 걸린다고 했죠? 그렇다 보니 올해 계약을 했어도 내년엔 보조금이 50%로 쪼그라드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굳이 5,990만 원짜리 기본 모델을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외제차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벤츠가 올해 EQA란 전기차를 출시하면서 보조금 정책 효과를 톡톡히 봤는데요. 기본 모델 가격이 5,990만 원이었습니다. 이 차는 조기 완판돼서, 지금은 살 수 없다고 합니다. 아우디도 내년 상반기 Q4라는 전기차를 출시하는데, 6,000만 원 밑으로 내놓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 기준을 5,500만 원까지 낮춰야 하는데, 골치가 아파지게 된 겁니다.
전기차 판매 1위 테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테슬라는 올해 보조금 기준이 바뀌면서 가격을 낮췄죠. 현재는 모델3 5개 트림과 모델Y 1개 트림이 100%(800만 원) 기준으로 보조금을 받고 있습니다. (주행거리 등 보조금 산정방식 계산에 따라 실제로 받는 보조금은 이보다 작습니다.)
EV6처럼 깡통 옵션으로 인증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보조금 정책의 목표 달성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전기차는 비싸죠. 서민이 사는 차는 아닙니다. 이 때문에 전기차 보조금을 두고 역진적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나오죠. 그래서 꾸준히 보조금을 지급하는 가격 기준을 낮춰왔습니다. 전기차의 가격을 낮춰서 내연기관차에 대항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것도 정책 목표의 하나입니다. 한데 깡통 옵션으로 이걸 피해가게 되면 안 된다는 거죠.
이런 문제 때문에 환경부도 제조업체들과 협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권장소비자가격에 들어가야 하는 기본 옵션을 구체적으로 정하겠다는 거죠. 이렇게 되면 EV6 최고사양도 보조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건 내년 초 보조금 지침을 확정할 때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근데 의문점이 생깁니다. 정부가 탄소 감축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죠. 한데 왜 전기차 보조금은 줄일까요. 실제로 넷제로에 앞장서고 있는 독일은 지난해 보조금을 올렸죠. 최대 1만 달러 넘게 받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보조금 인상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미국도 최근 보조금 정책을 전면 개편했죠. 원래 7,500달러였던 보조금을 2022년에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최근 민주당이 이걸 뒤집은 법안을 냈죠. 다만 유럽과는 조금 다릅니다. 미국 내에서 생산한 전기차에 7,500달러를 주죠. 여기에 노조가 있는 제조사면 4,500달러를 더 줍니다. 미국 내에서 생산한 배터리가 들어가면 500달러가 또 추가되죠. 이렇게 최대 1만2,500달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테슬라는 노조가 없죠. 그래서 일론 머스크가 이 법안에 강하게 반반하고 있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반대냐. 사실 우리나라 보조금은 이미 굉장히 높은 수준입니다. 2017년에 국고보조금이 1,400만 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단계적으로 줄이고 있기도 합니다. 지방정부 보조금까지 더하면 훨씬 많죠. 경상북도 울릉군의 보조금은 1,100만 원, 충청남도 서산시는 1,000만 원입니다. 서울은 200만 원이죠. 어디서 사는지에 따라 보조금이 차이가 크게 나긴 하지만, 여하튼 보조금을 굉장히 많이 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국고보조금을 600만 원까지 낮추겠다는 계획을 정부가 이미 밝혀놓은 상황입니다.
지방 보조금 때문에 중고차 시장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전기차는 2년간 의무 운행 기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에 전기차를 팔면 받은 보조금은 그대로 차를 구매하는 사람에게 양도해야 합니다. 그만큼 보조금이 빠진 가격으로 중고거래가 되겠죠. 실제로 중고 전기차 가격도 수도권 기준으로 보조금을 뺀 가격으로 형성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아직 전기차 중고시장은 크진 않습니다.
다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죠. 극단적으로는 신차 가격이 중고차 가격보다 낮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올해 5,990만 원에 전기차를 울릉도에서 샀다고 하면 보조금 1,900만 원(국고 800만 원, 지방 1,100만 원)을 뺀 4,090만 원이 신차 구매 비용입니다. 서울에서 살면 신차 가격이 4,990만 원이죠. 2년 뒤에 감가상각비나 차 상태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울릉도에서 신차를 사는 게 더 쌀 수도 있다는 거죠.
물론 지자체별로 전기차를 팔 때 보조금을 토해내도록 하는 곳도 있습니다. 혹은 해당 지자체 내에서만 중고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합니다. 다만 그런데도 이를 피해서 ‘꼼수 거래’하는 일도 있습니다. 지금이야 중고차 시장이 크지 않아서 별문제는 없지만, 향후 시장이 커지면 문제가 커질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