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6-06-05 (금)

편의점서 '맥주4캔=1만1천원' 사라질뻔한 사연

  • 입력 2023-04-10 16:37
  • 장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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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류(술) 중간 유통단계에서 할인 판매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럼 그동안 술은 할인이 안됐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편의점이나 음식점처럼 소비자에게 직접 파는 술은 엄청나게 할인 판매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중간 유통단계는 다릅니다. 주류면허법에 따르면 제조→도매→소매 판매, 즉 B2B 거래단계에서는 원칙적으로 할인 판매가 금지해왔습니다.




주류 산업은 유통구조가 복잡하고 세율이 높아 무자료 같은 음성거래가 일어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할인을 허용해 주면 리베이트가 빈번해져 매출 파악도 제대로 안되고 이로 인해 탈세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할인 판매를 원칙적으로 틀어막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할인이 없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주류 도매업자가 소주를 10짝을 사 가는 음식점하고 1000짝을 사 가는 술집에 똑같은 가격으로 판다는 게 말이 안됩니다. 판매량이 많거나 혹은 결제를 빨리한다거나 하면 통상 다른 데보다 싸게 공급을 해왔습니다. 법 상 안되는 할인 판매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얼마 전까지 국세청 고시에 "무자료 거래를 조장하거나 주류 거래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할인을 해서는 안된다"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세청이 봐서 거래질서를 문란하게 할 정도가 아니라면 눈감아주겠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죠.

●애매해진 할인판매 허용 규정

그런데 작년 말 국세청 고시가 시행령으로 상향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이 규정이 시행령에 포함되면서 국세청의 상위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유권해석에 개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주류 거래질서를 문란하게 하는"이라는 문구가 사라지면서 할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문만 남게 된 겁니다. 일부 주류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모든 할인이 금지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문구만 보면 그렇게 이해하는 게 당연해 보입니다. 당장 현장에서는 소매업자는 지금까지 해오던 데로 할인을 요구하고, 도매업자들은 법이 바뀌어서 할인 안된다며 옥신각신하는 상황도 생겼습니다. 편의점에서 4캔에 1만1000원에 묶어 싸게 팔던 맥주도 더 이상 판매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편의점이 대량 구매하며 경쟁사보다 싸게 납품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였는데, 유통과정에서 할인이 사라지면 소비자에게 싸게 팔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 겁니다.

현장에서 혼란이 가중되자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정상적 거래 관행 정도의 할인은 문제가 없다"면서 진화에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할인 판매를 해도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차제에 문구에 대한 혼란을 명확하게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유통과정에서 할인 가능 폭을 아예 정해주겠다는 겁니다. 한발 더 나아가 최대한 할인을 많이 해주면 좋겠다는 뜻도 내비칩니다. 묶음판매 등을 통해 최종 소비자 판매 가격을 내릴 수 있을것이라면서요.

●치솟은 물가‥소주가격 한푼이라도 내려야

과세당국은 그동안 술 할인 판매에 대해서는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했습니다. 할인이 리베이트의 우회로가 될 수 있는 데다, 술을 싸게 팔면 국민 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유통 단계에서는 할인 판매를 막아온 겁니다. 그런데 왜 스탠스가 달라진 것일까요. 이는 최근 물가 상황과 밀접합니다.

소주처럼 국민이 많이 찾는 술이 음식점에서 5000~6000원에 팔리고 있습니다. 서민의 술이 이런 가격에 판매되니 사람들이 물가가 진짜 많이 올랐구나 하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통계청 소비자물가조사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으로 외식 소주 가격은 1년 전보다 11.2% 올랐고 외식 맥주 가격은 10.5% 올랐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 없는 상황이죠. 맥주처럼 물가가 오르면 자동적으로 가격이 오르는 종량세를 바꾸는 것도 검토하고, 주류 할인 판매 가이드라인도 명확하게 해서 도매단계에서 술값 할인 경쟁을 유도하는 방안을 생각한 겁니다.

도매가격이 내려가면 술값은 얼마나 내려갈까요. 주류 유통과정은 크게 생산업자→도매업자→소매업자로 진행이 됩니다. 이렇게 지정된 루트로만 거래해야 합니다.

소주나 맥주 같은 국내 생산 술은 제조원가+일종의 마진+세금(주세·교육세)이 붙어 출고 가격이 됩니다. 소주를 예로 들면 전분이나 당분으로 발효한 주정, 진짜 술의 원료를 사서 물과 첨가물을 혼합해 만듭니다. 소주 병이나 박스, 포장 같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여기다가 일정 마진을 붙인 제조원가가 550원에서 600원 정도 합니다. 제조가격에 72% 주세, 주세에 다시 30% 교육세, 여기에 10%이 부가세가 붙습니다. 그래서 제조사가 주류 도매상에 넘기는 소주 가격은 병당 1100원에서 1200원 수준입니다.



주류 도매상 여기에 물류비와 인건비 도매마진을 붙여서 1500원에서 1600원에 소매점(음식점)에 넘기는 겁니다. 편의점에서 1900원에서 2000원에 판매되고, 음식점에서는 임대료나 인건비 같은 비용에 마진을 얹어서 6000원에 파는 구조입니다.

만약 도매단계에서 치열한 할인 경쟁이 벌어져도 가격은 50원에서 100원 떨어지는 수준에 불과할 겁니다. 할인점이나 편의점에서 사는 소주는 2000원이 채 안됩니다. 문제는 5000원~6000원에 판매하는 음식점인데, 이는 주류 제조사나 도매상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정부가 도매 할인 경쟁을 붙여서 술값을 100원이라도 내리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음식점은 관행적으로 주세나 출고 가격이 오를 때 맞춰 판매 가격을 올립니다. 출고나 도매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추면 최종 판매단계인 음식점에서도 소주 가격을 적어도 올리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는 겁니다.

효과는 미지수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 소주 판매 가격은 음식점 사장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물가 상승에 조급해진 정부가 보여주기식 대책을 내놓은 게 아닌가 하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부 정책이 효과를 내서 음식점에서 소주를 싸게 판다고 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국민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까요.









장순원 언더스탠딩 기자 changsw5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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