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6-04-11 (토)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형 PF의 모든 것

  • 입력 2024-07-17 18:39
  •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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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를 짓는 데 필요한 자기자본비율입니다. 짓는 데 1,000억원이라는 돈이 드는 개발사업이면, 고작 30억만 넣어도 아파트 완공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요. 심지어 자기자본 비율이 1%도 안 되는 개발사업도 부지기수입니다.

비상식적이어도, 너무 비상식적이죠. 이게 가능한 건 한국형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때문입니다. 보통 해외에서는 땅값(사업비의 30~40%) 정도는 자기자본으로 확보해야, 개발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은행에서 공사비 대출을 해주니까요. 그게 원래 PF라는 금융기법이고요. 근데 우리나라는 고작 3%.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오늘 ‘언더스탠딩(Understanding)’의 주인공은 PF입니다. 너무 많이 다뤘던 사안이긴 합니다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에 보고서를 하나 냈습니다. 우리나라 PF 사업의 자본 비율은 3%밖에 안 되는데. 이 자본 비율을 높이고. 낮은 자본 비율을 떠받쳤던 건설사의 보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본질적 문제부터 해결책까지 한 줄에 꿰는 보고서인데요. 정말 바꿀 수 있는 건지. 바꾼다면 어떻게 바꿔야 하는 건지. 바꾸면 뭐가 나아지는 건지 등등을 한번 따져보겠습니다.

◆자본 비율 4%로 저축은행 망했는데, 여전히 3%?

우선 현황. KDI가 사업비 기준 100조원 규모의 300개 PF 사업장 재무구조를 뜯어봤습니다. 한 사업장당 평균 총사업비는 3,749억원, 자기자본은 118억원이었습니다. 자기자본비율은 3.15%. 주거용 PF는 2.92%, 상업용은 4.33%였고요. 3%라고 하는 수치가 어느 정도냐. 개발사업을 하려면 땅을 먼저 사야 하죠. 이 땅이 전체 사업비의 30% 정도라고 하면. 3%는 그 땅의 계약금 정도에 불과합니다. 수천억 개발이익이 생기는 개발사업을 고장 땅 계약금 정도만 손에 쥐고 시작할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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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실 이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닙니다. 2009년 비슷한 조사를 한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4대 은행이 보유한 PF 464건을 봤더니 평균 자기자본비율이 주거용 PF는 4.2%고, 상업용은 6%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건설사들이 줄줄이 망하고, 2011년엔 저축은행이 무더기로 무너져서 공적자금을 27조원이나 쏟아붓기도 했습니다.(여전히 13조원은 회수 못했다는.) 근데 오히려 그때보다 자본 비율이 더 낮아졌다니. 물론 포괄 범위가 달라서 직접 비교할 순 없지만요.

그때도 자본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규제도 만들긴 했고요. 자기자본 비율이 20%가 넘지 않으면, PF 대출하지 못하게. 다만 그 대상이 저축은행뿐이었다는 게 함정이지만요. 사실 최근에 PF 때문에 저축은행이 어려워진 이유도 이 규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업성이 좋은 괜찮은 사업은 이 규제 때문에 저축은행은 거들떠도 안 봤을 테고, 그 어디서도 PF 대출 못 받는 프로젝트만 꾸역꾸역 자본비율 20%를 맞춰서 찾아왔겠죠. 그래서 가장 먼저 터지는 거고요.(금융당국 공무원님들, 대체 이게 뭡니꽈?)

◆3억 넣고 3,500억? 수익률 12만%가 가능한 이유

자본 비율이 낮으면 뭐가 문제일까요? ①일단 리스크는 낮고, 수익률은 어마어마해집니다. 수도권 A 택지 개발사업을 예로 들어보죠. 사업비는 1조3,000억원. 시행을 맡은 특수목적법인 B사의 자기자본은 0.4%인 50억원에 불과했습니다. 이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디벨로퍼는 불과 5,000만원을 넣었고요. 개인투자자가 특정금전신탁이란 형태로 3억원을 출자했습니다. 개발이 끝난 뒤 나눠 가진 배당금은 5,900억원. 이 중에 5,000만원 넣은 디벨로퍼가 600억원, 리스크가 고작 3억원인 개인투자자는 3,500억원을 가져갔습니다. 와우. 수익률이 무려 12만%. 지구상 어디에 이런 투자처가 있을까요? 이익의 ‘몰빵’ 사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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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사업이 망했다고 해보죠. 토지매입비 6,000억원을 꿔준 은행은 골이 아파집니다. 건설사가 보증을 섰다면 건설사가 대신 갚아야 할 테고. 건설사가 망해서 돈을 못 받는다고 하면 은행이 이걸 뒤집어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이 사업장이 망하면 건설사가 하는 다른 PF 사업장도 망할 수 있고. 그렇다 보면 다른 은행까지도 위험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②손실의 사회화인데요.

‘저자본’의 시행사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건설사의 ‘고보증’ 구조라면 이 문제가 무한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2011년 그 위기를 겪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문제가 반복하고 있고요. 그래서 이제는 바꾸자는 게 KDI의 주장입니다.

◆미국 등 해외 선진국은 자본 비율이 적어도 30%

그렇다면 3%가 얼마나 낮은 거냐. 일단 미국을 보면 시행사의 자본 비율이 33%나 됩니다. 보통 시행을 맡은 디벨로퍼가 자기자본의 10%를 대고, 나머지 90%는 리츠나 연기금, 건설사, 금융회사 등이 지분투자를 합니다. 사업비 1,000억원짜리 개발사업이다? 시행사가 토지 계약금인 3.3억원 정도를 마련하고, 사업계획서를 만들어서 투자자를 유치하러 다니는 겁니다. 그래서 투자금을 326.7억원을 마련하는 거죠. 이 돈으로 땅을 사고 인허가를 받습니다. 그러면 은행에 가서 공사에 필요한 나머지 67%의 돈을 꿀 수 있다는 겁니다. 건설사는 지분투자에 참여해서 공사를 따내고, 나중에 개발이익이 나면 지분대로 배당받는 정도의 역할에 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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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자본시장이 전 세계 최강이니까 이런 구조가 가능하겠죠. 그게 아닌 나라는 안 되냐? 일본도 자기자본비율이 30%나 됩니다. 보통 디벨로퍼가 자기자본의 3분의1이나 절반을 대고요. 나머지만 투자자를 유치합니다. 롯폰기힐스나 아키하바라 같은 대형 개발사업에선 시행사의 자기자본이 전체 사업비 대비 37%, 36%나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갑자기 부동산 시장이 차게 식어도, 묵혀놨다가 살아날 때쯤 개발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덩치가 큰 디벨로퍼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본 3대 디벨로퍼는 미츠이부동산, 미츠비시지쇼, 모리빌딩인데요. 미츠이부동산이나 미츠비시지쇼는 2차 세계대전까지 일본을 대표하던 재벌이었죠. 스미토모까지 더해서. 패전 이후 다 해체되긴 했지만요. 도쿄 디즈니랜드 개발로 유명한 미츠이부동산은 1914년에 설립됐다고 합니다.(1941년에 미츠이그룹 부동산 부문에서 독립했지만.) 2022년기준 총자산이 76.5조원에 달할 정도. 총자산이 56.2조원인 미츠비시지쇼도 1937년에 세워졌고요. 말석인 모리빌딩(총자산 22.5조원)의 나이도 60살이 넘습니다. 자본력이 탄탄할 수밖에요. 일본 부동산 시장이 1990년 거품 붕괴 이후 최근까지 줄곧 바닥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믿기 힘든 덩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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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우리나라 1등 디벨로퍼인 DS네트웍스의 2022년 기준 총자산은 3.6조원에 불과합니다. 2022년 미츠이부동산의 영업이익에도 못 미치는 구모죠. DS네트웍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엠디엠(총자산 1.2조원), 신영(총자산 2.1조원) 등이 있지만. 지난 20년간 집값이 급격히 올랐음에도, 일본 디벨로퍼에 덩치를 비교할 수준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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