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6-06-05 (금)

블랙프라이데이, 왜 미국은 되고 우리는 안되나

  • 입력 2021-11-19 16:16
  • 김상훈 백브리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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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기다리는 글로벌 세일 이벤트, 블랙프라이데이가 오는 27일 막을 올립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15일 코리아세일페스타가 끝났죠. 아마 모르는 분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알아도 신경 쓰지 않는 분들도 많죠. 코리아세일페스타는 블랙프라이데이처럼 될 수 있을까요?

블랙프라이데이의 역사는 근 70여 년에 달합니다. 미국은 추수감사절 바로 다음 금요일부터를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으로 여기죠. 이에 맞춰서 백화점 등 소매업체가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열광하느냐.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건 1961년 필라델피아였다고 합니다. 경찰이 공식적으로 작성한 문서에 나오는데요. 이상하게 추수감사절 다음 날은 차가 너무 막히는데, 봤더니 소매업자들이 블랙프라이데이라는 행사를 하더라는 겁니다. 반값은 기본이고, 상품에 따라서는 90% 세일을 하니 사람들이 몰려가서 차가 막히더라 뭐 이런 내용입니다.

2008년엔 이런 일도 있었죠. 미국 뉴욕의 월마트에서 경비원이 밀려드는 손님에 깔려 죽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오전 5시에 문을 여는데, 이미 줄 선 사람이 2,000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문을 열자마자 문을 부수면서 밀려들었다고 합니다.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죠.

얼마나 많이 팔까요. 지난해 판매 추이를 볼까요. 블랙프라이데이가 되면 이전 판매량의 4배가량을 팝니다. 할인판매 기간 얼마나 팔까요. 지난해 전미소매협회(NRF)가 추산한 예정 판매량은 우리나라 돈으로 900조 원 가까이 됩니다. 블랙이라는 어원도 여기서 옵니다. 전날까지 적자(Red)였던 회계장부가 이날부터 흑자(Black)로 돌아선다는 거죠. 이른바 ‘흑자의 금요일’입니다.
자료:전미소매협회(NRF)

자료:전미소매협회(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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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규모 할인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게 가능한 게 ‘직매입’이라고 하는 거래방식 때문입니다. 미국의 백화점이나 가전판매점 등 소매업체는 제조업체에서 직접 물건을 떼다가 판매를 합니다. 신상이 나오면 이걸 싼값에 대량 구매해서 창고에 쌓아놓고 판다는 건데요. 보통 비중이 80% 전후입니다. 다음 신상이 나오기 전까지 이걸 다 팔지 못하면 고스란히 손해로 남을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추수감사절이 끝나고 나면 이걸 떨이로 싸게 파는 겁니다. 공장에서 대량 구매로 싼값에 사 왔을 테니 떨이로 팔아도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거죠. 백화점도 좋고, 소비자도 좋고. 서로 ‘윈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코리아세일페스타는 이런 대규모 세일 행사를 못 할까요. 2015년 시작한 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소비자의 시선은 싸늘합니다. 이유는 유통구조의 차이 때문입니다. 보통 대규모 세일에서 소비자가 기대하는 건, 평소에 비싸서 살 수 없었던 상품을 싸게 사는 겁니다. 백화점이나 가전판매점 등이 세일 행사에 참여하느냐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인데요.

문제는 구조적으로 백화점이나 가전판매점은 떨이 판매를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블랙프라이데이의 핵심은 직매입이라는 거래방식이라고 얘기를 했죠? 우리나라 백화점의 직매입 비중은 2018년 기준으로 4.1%에 불과합니다.(최근 10%까지 올라갔다는 얘기가 있지만 공식적인 숫자는 아닙니다.) 아웃렛도 5.4%밖에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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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95%가량이 ‘특약매입’이거나 임대차 방식인데요. 특약매입이 뭐냐. 쉽게 얘기하면 백화점이 납품업체에 외상으로 물건을 떼다 파는 방식입니다. 한데 이상하게 판매 주체는 납품업체입니다. 상품을 팔아서 돈을 벌면 수수료를 뗀 나머지가 납품업체 몫입니다. 재고는 어떻게 될까요? 이 재고는 납품업체의 창고로 다시 돌아갑니다. 창고에 남아있는 재고가 없으니, 떨이 판매를 할 필요도 없는 거죠. 속된 말로 ‘독박’은 납품업체가 다 뒤집어씁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거래방식입니다.

왜 이런 거래방식이 자리를 잡게 된 걸까요. 권력 구도 탓입니다. 미국에서 직매입이 주된 거래방식이 된 이유는, 제조업체가 갑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통 채널이 많으니, 제조업체가 “한꺼번에 구매 안 하면 안 팔겠다”라는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거죠. 실제로 판매 부진의 리스크를 짊어지는 쪽, 그러니까 유통업체가 당연히 을이 되겠죠. 그래서 1950년 전후에 소매업체들이 모여서 자구책으로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이벤트 행사를 하게 된 겁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뒤 미국에서 전통의 백화점이 파산보호 신청 목전까지 갔다는 기사들이 나오기도 했죠. 창고에 물건은 쌓아놨는데, 팔라지 않으니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겁니다.

한국은 정반대입니다. 롯데나 신세계 같은 유통 대기업이 ‘절대갑’이죠. 납품업체나 제조업체는 이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거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고 부담은 당연히 납품업체가 짊어져야 했겠죠. 심지어는 백화점이 특약매입으로 버는 수수료가 직매입의 마진보다 더 많습니다. 직매입으로 판 뒤 유통업체가 받는 수수료는 18.6%인데, 재고 부담을 떠넘기고 받는 특약매입 수수료는 25.4%에 달합니다. (전체 유통업체 평균이라 실제 수치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백화점 입장에선 답이 뻔히 나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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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업체 처지에선 특약매입이 가장 ‘꽝’인 선택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특약매입 비중이 1%포인트(P) 높아지면, 납품업체 주력상품의 매출액이 1.8%가량 줄어듭니다. 독배인 줄 알지만 마실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유통 대기업이 무슨 유통업체냐. 임대료나 따먹는 부동산회사 아니냐. 뭐 이런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백화점이 빠지면 맥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앙꼬 없는 찐빵이랄까. 의류를 비롯해 액세서리, 유아용품, 화장품, 스포츠용품, 가구, 가전제품 등 이런 품목은 직매입 비중이 매우 낮습니다. 대부분 백화점이나 아웃렛 등에서 파는 상품이죠. 블랙프라이데이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는 품목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품들이 없다 보니, 코리아세일페스타가 소비자 눈에 들기가 어려운 거죠.

실제로 지난해 미국 블랙프라이데이를 한번 볼까요. 구매자 둘 중 하나는 의류를 샀습니다. 그다음이 장난감이었고, 세 번째가 책이나 비디오게임이었습니다. 4위가 전자제품인데, 구매 비중이 27% 정도입니다. 넷 중 하나는 가전제품을 샀다는 거죠. 물건 구매를 위해 가장 많이 찾는 곳도 백화점이었습니다.

백화점, 혹은 의류 같은 제품이 빠지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100만 원짜리 옷을 50만 원에 사면 할인율이 50%죠. 2,000원짜리 감자를 1,000원에 파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감자를 반값에 샀다고 우리가 ‘대박’ 세일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실제로 블랙프라이데이의 평균 할인율은 37%로, 코리아세일페스타(30%)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결국 어떤 상품을 떨이로 파냐에 따라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이 전혀 딸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하여튼 쉽게 말하면 한국에서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대규모 세일 이벤트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런 기대가 있기도 합니다. 쿠팡 같은 이커머스 기업이 유통시장을 장악하면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쿠팡의 직매입 비중은 90%가 넘습니다. 중국에서도 알리바바가 매년 11월 11일에 광군제라는 대대적 세일 행사를 하죠. 평균 할인율이 64%에 달합니다. 미국에서도 추수감사절 다음 주 월요일에 ‘사이버먼데이’란 세일 이벤트가 있죠. 아마존 같은 이커머스 기업이 참여하는데, 블랙프라이데이의 온라인 매출액을 이미 추월했습니다.

다만 한계도 명확하긴 합니다. 쿠팡이 직매입으로 파는 품목 대부분이 우리가 대규모 세일 행사를 기다려 구매하려고 할 만큼의 고가의 상품들이 아닙니다. 11번가도 ‘십일절’이란 세일 이벤트를 하고 있죠.

이런 문제도 있습니다. 직매입이 보편화하더라도 최근 유통업계에서 부는 ‘스마트물류’ 때문에 쉽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스마트물류라는 게 이런 개념입니다. 언제 어디서 뭐가 팔릴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그만큼만 재고를 쌓아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빨리 배송하자. 그러면 연말 떨이 판매를 기대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겠죠.

김상훈 언더스탠딩 기자 ksh-3protv@outloo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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