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의 시가총액이 4대 금융지주 시총을 넘어섰다는 기사가 화제였습니다. 순자산이나 영업이익이 4대 금융지주와 비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적은 이들에게 왜 투자자가 몰릴까요. 뭐 사실 최근 주식시장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기도 하죠. 이제 막 전기 픽업트럭을 팔기 시작한 리비안의 주가가 포드와 GM을 넘어서기도 했죠. 근데 이건 기술이라도 있죠. 도대체 라이선스 사업인 금융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플랫폼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파괴력이 있는 걸까요?
실제로 전통 금융회사들은 카카오가 금융시장을 집어삼킬 가능성이 크다는 걱정을 많이 합니다. 상품은 자신들이 만들지만, 판매는 플랫폼이 하는 세상이 온다는 거죠.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아직은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다고 할 만한 사례를 찾을 순 없습니다. 다만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사례가 있긴 합니다. 네이버가 하는 스마트스토어대출이란 상품을 보면 플랫폼이 어떤 세상을 열 수 있는지 알 수 있는데요.
스마트스토어대출은 네이버파이낸셜이 네이버쇼핑에 입점한 46만 개 업체를 대상으로 대출을 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한데 네이버는 금융기관이 아니라서 대출을 직접 해줄 수는 없죠. 그래서 미래에셋캐피탈과 손을 잡습니다. 신용평가는 네이버가 하고, 대출 상품은 미래에셋이 파는 구조죠. 좀 이상하죠? 대출은 기본(basic)은 신용평가입니다. 사실 금융이라는 게 돈을 빌려주면서 리스크를 얼마나 정확히 측정하는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그게 신용평가를 통해 이뤄집니다. 이걸 바탕으로 금리를 얼마로 해야 할지가 결정되죠. 근데 금융사가 아닌 네이버가 신용평가를 하고, 미래에셋은 대출 실행만 한다는 거죠. 대출 부실에 대한 리스크도 미래에셋이 집니다. 과거의 잣대로 보면 이상할 수밖에 없죠.
잠깐 옆으로 새는 얘기지만, 네이버는 이걸로 돈을 벌려고 한 건 아닙니다. 이커머스기업인 네이버쇼핑은 쿠팡이나 이베이코리아, 11번가 같은 쟁쟁한 경쟁자가 많죠. 양질의 상품을 제공하는 게 중요한데, 그래서 쇼핑몰 생태계를 키우려고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좋은 상품을 팔지만, 기존 은행에서 대출을 못 받는 이들을 위한 일종의 상생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죠.
네이버 대출은 앞으로 올 세상에 대한 일종의 ‘프리퀄(prequel)’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비누를 파는 회사를 만들어 네이버에 입점했다고 가정을 해보죠. 생각보다 비누가 잘 팔렸어요. 6개월쯤 되니 이제는 비누를 좀 더 많이 만들어서 팔아도 되겠다 싶은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은행에 가면 대출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매출은 얼마나 되는지, 돈을 얼마나 잘 버는지, 다른 빚은 없는지 이런 정보들이 있어야 합니다. 고작 문을 연 지 반년밖에 안 됐는데 그런 정보가 있을 리 없죠. 개인사업자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세청에 매출 신고를 한 뒤 6~12개월은 돼야 이게 파악이 됩니다. 앞으로는 네이버 입점 업체만 아니라 개인들도 이런 대출이 가능해집니다.
이걸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대안신용평가’입니다. 네이버는 플랫폼이라서 입점 업체의 실시간 매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굳이 장부에 있는 매출데이터가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미래 예측도 가능하죠. 반품률이나 재구매율은 얼마나 되는지, 단골고객은 몇인지, 고객 응대 속도는 또 얼마나 빠른지 등등. 이런 정보를 모아서 신용평가를 한 뒤 대출을 해주는 겁니다. 이러면 기존 신용평가로 대출을 못 받던 이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거죠.
얼마나 팔렸을까요. 출시한 지 1년도 안 돼 대출 잔액이 1,00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이중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이 안 된 업체의 대출이 20%나 됩니다. 대안신용평가로 오히려 금리가 낮아진 곳도 40%라고 합니다. 금리도 시중은행 대출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잘 되다 보니 지난 7월엔 우리은행도 같이 해보자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물론 시중은행에도 비슷한 상품이 있긴 합니다. KB국민은행이 셀러론이란 상품을 팔고 있죠. 쿠팡이나 무신사, 위메프, 이베이코리아 같은 전자상거래 기업과 제휴를 해서 만든 상품입니다. 이들 매출데이터를 바탕으로 입점업체에 대출을 해주는 방식이죠.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네이버 대출은 신용대출입니다. 대출이 회사가 안 되면 고스란히 금융사가 이걸 손실로 처리해야 하는 거죠. KB 셀러론은 매출채권 담보대출입니다. 보통 우리가 상품을 구매하더라도, 이 돈이 판매자에게 전달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죠. 그래서 이 매출채권을 담보로 먼저 돈을 빌려주고, 나중에 대금이 입금되면 금융사가 이걸 가져가는 겁니다. 전문용어로는 선(先) 정산형 대출이라고 합니다. 담보대출은 신용대출과 비교해선 훨씬 쉽고, 또 단순한 대출이죠.
대안신용평가 모델의 핵심은 비금융데이터입니다. 플랫폼만 가질 수 있는 거죠. 거기다 예측력도 매우 훌륭합니다. 네이버 대출은 지금까지 30일 이상 연체한 사례가 단 한 건만 있다고 합니다.
은행들이 걱정하는 건 이런 일이 앞으로 개인 금융상품 시장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최근 네이버가 후불결제서비스, 쉽게 말해 신용카드 서비스를 시작했죠. 지난 4월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구조는 이렇습니다. 선불로 충전해 놓은 돈보다 결제 금액이 클 수 있죠. 그러면 결제가 안 되는데, 이 서비스를 통하면 일단 결제해놓은 뒤 모자란 금액은 나중에 갚아도 됩니다. 아직은 30만 원 한도로 크진 않습니다. 서비스를 신청한 고객을 대상으로 대안신용평가를 한 뒤, 연체 가능성이 작으면 해주는 거라 아직은 제한적입니다. 연체되면 네이버 역시 금융사처럼 대손충당금을 쌓습니다. 범위가 좁긴 하지만, 사실상 금융상품이라고 할 수 있죠.
카카오도 비슷한 서비스를 준비 중입니다. 먼저 후불 교통카드를 내놓은 계획인데요. 후불 교통카드는 은행에서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정한 소득이 있어야 하죠. 그래서 학생들은 보통 선불카드를 쓰죠. 대안신용평가를 통하면 소득이 없어도 후불결제서비스가 가능합니다. 이게 확장되면 사실상 신용카드가 되는 거죠.
미국의 신용평가업체인 렌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분석해 신용등급을 정하기도 합니다. SNS로 만나는 친구들을 보고 돈을 갚을지, 못 갚을지를 판단한다는 건데요.
아직은 대안신용평가 모델을 적용해 대출(46만 개 입점업체만 대상으로 하는 제한적)이 되는 사례는 네이버가 유일합니다. 하지만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도 대안신용평가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의 정보와 카카오의 거래정보, 여기에 카카오 계열 금융사의 금융정보를 결합한다고 합니다.
은행들이 무서워하는 건 바로 이겁니다. 은행도 대안신용평가 모델을 만들 순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데요. 네이버나 미래에셋처럼 협력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커머스 기업이 쉽게 정보를 주지 않겠죠. 지정대리인이란 제도가 있습니다. 금융사가 핀테크 기업과 손잡고 금융상품을 팔려면, 한 곳이랑만 거래를 해야 한다는 규제입니다.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든다. 뭐 이런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1일 시범 서비스가 시작된 마이데이터 사업으로 환경이 조금 나아지긴 했습니다. 52개 참여기업엔 네이버파이낸셜이나 카카오페이의 같은 전자결제 사업자도 포함됩니다. 이들의 주문내역 같은 정보를 은행이 손에 쥘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이것도 한계는 명확합니다. 마이데이터 사업의 법상 명칭은 본인‘신용정보’관리업입니다. 주문내역이 신용정보라곤 할 수 없죠? 그래서 거래내역을 12개 카테고리로 나눠서 범주화하고, 이걸 금융기관이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속옷을 샀으면, 의류를 구매한 걸로만 파악할 수 있다는 거죠. 은행이 불만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금융 거래정보는 원본 데이터를 주는데, 왜 거래정보는 안되냐는 거죠. 또 정보 유출 위험 때문에 가명 정보만 받을 수 있습니다. 활용도 측면에선 아무래도 불리할 수밖에 없겠죠.
그렇다고 은행이 카카오처럼 직접 전자상거래업을 할 순 없습니다. 은산분리 원칙 때문인데요. 카카오는 인터넷전문은행 라이선스를 취득할 때 완화된 법 적용을 받았습니다. 카카오뱅크가 금융사긴 하지만, 카카오는 금융지주가 아니다. 금융지주가 되면 비금융 회사의 주식을 보유할 수가 없죠. 카카오는 금융계열회사의 자산이 전체의 50%만 넘지 않으면 됩니다.
반면 금융지주사는 비금융 회사의 주식을 보유할 수도 없고, 계열 금융회사의 관리·감독업무 외의 사업은 할 수 없습니다. 금융지주사를 두고 사실상 껍데기뿐인 회사라는 얘기도 이래서 나옵니다.
이게 어떤 차이를 가져오느냐. 카카오는 금융지주사가 아니기 때문에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을 운영할 수 있게 됩니다. 이 플랫폼을 통해 카카오커머스 등의 거래정보를 금융사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죠.
그래서 가능한 게 바로 알 모으기 투자입니다. 카카오페이로 결제를 하면 보상으로 알을 받죠. 이 알을 까면 무작위로 포인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걸 ‘원스톱’으로 카카오페이증권 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거죠. 아직은 운용액이 많지 않아서 의미 있는 비즈니스 모델은 아닙니다. 다만 잠재고객 확보에선 엄청난 효과를 봤죠. 국내 전체 공모 펀드 계좌 수의 33%가 카카오페이증권 계좌라고 합니다.
이런 제도적 차이,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에 이런 주장도 나옵니다. 금융지주가 비금융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은산분리 원칙을 완화해야 한다. 그래야 빅테크와 경쟁할 수 있다는 거죠. 최근 은행이 ‘수퍼앱’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금융당국에 요청하고, 금융당국이 제도를 완화해주겠다고 답한 것도 이런 맥락과 비슷합니다. 수퍼앱은 금융지주사가 앱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 계열 금융회사의 앱을 한데 모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