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6-06-05 (금)

'녹색 심판대' 오른 원전... EU가 결론 낸다

  • 입력 2021-12-14 17:32
  • 김상훈 백브리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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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통신이 오는 22일 유럽연합(EU)이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Taxonomy)를 확정해서 발표한다고 보도했습니다. 택소노미, 너무나 생소한 단어죠. 하지만 이번 결정이 향후 에너지 시장 판도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또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분기점이 되기도 합니다.

먼저 택소노미가 뭔지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퀴즈 하나. 산을 깎아서 만든 태양광 발전소는 친환경일까요? 실제로는 친환경이 아니면서 친환경인 척 위장하는 것을 두고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라고 하는데요. 이걸 정확히 판단할 수 있도록 세운 공식적 기준을 택소노미라고 합니다. 우리가 친환경 상품에 찍어주는 친환경 인증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지난 3월 EU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초안을 만들어 공개했고, 이번에 원전과 천연가스(LNG) 발전의 포함 여부를 결정해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EU가 이걸 자발적으로 하는 건 아닙니다. 최근에 기관투자자들이 ESG 투자를 많이 하죠. 한데 투자해놓고 보니 그린워싱이더라, 그러니 정부에서 정확한 분류체계를 만들어달라 이런 요청을 해서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고도 할 수 있죠. 탄소 감축을 위한 녹색 경제활동을 분류하고, 이렇게 분류된 경제활동은 금리가 낮은 녹색채권(그린본드·Green Bond)을 발행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렌터카 회사는 그린본드 발행을 못 하죠. 하지만 전기차 구매를 리스로 제공하면 그린본드 발행이 가능해지는 거죠. 다만 이렇게 조달한 돈을 쓸 때마다 공시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원전 포함 여부가 중요하게 이 때문입니다. 원전이 친환경이나 아니냐는 논란은 장구한 역사가 있고, 또 그만큼 뜨겁습니다. 실제로 원전은 탄소 배출이 제로에 가깝습니다. 원전과 탄소 배출량이 비슷한 발전원은 수소발전과 풍력입니다. 태양광은 오히려 더 많죠. 친원전 측에서 원전이 택소노미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원래 EU가 발표한 초안에선 원전이 빠졌었습니다. 이후 프랑스와 동유럽국가들이 반발했고, 그래서 EU 집행위원회가 최종안에서 결론을 내기로 한 겁니다. 다만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의 국가가 반대하면서 여전히 여론은 팽팽합니다.

원전이 택소노미에 포함되면 쇠락의 길을 걷던 원전이 되살아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선진국에서야 원전이 국민 반대 때문에 어렵지만, 개발도상국에선 금융기관에서 자금 조달이 막혀서 못 짓고 있습니다. 인허가부터 착공, 그리고 완공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대형 금융기관에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야 하는데, 지금은 이게 어렵다는 겁니다. 이미 석탄발전소는 온실가스 감축 문제로 짓기가 어렵죠.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되면 들어가면 이게 가능해집니다. 당장 1조 유로(1,300조 원)인 EU 기후변화 대응 투자 예산 쓸 수 있습니다. 원전 건설에 적극적인 폴란드나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국가에선 실제 원전을 지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프랑스나 영국 등 소형 모듈 원자로(SMR)를 개발하는 국가도 국가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됩니다.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일단 신재생 업계나 환경단체 쪽에선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미 금융시장의 분위기가 돌이킬 수 없다는 건데요. 실제로 기관투자자 연합체인 에셋오너얼라이언스라는 기관에서, 기준이 어떻게 되든 원전에는 투자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EU 집행위원회에 보냈습니다.

우리도 K-택소노미를 만들고 있습니다. EU와 가장 큰 차이점은 핵심 쟁점이 원전이 아니라 LNG라는 겁니다. 지난 4월 초안 발표 이후에 4차례에 걸쳐 수정 논의를 하고 있지만, 원전은 아예 배제된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 LNG 발전을 어떻게 결론 내릴지가 더 큰 관심사인 거죠.

EU는 원래 LNG 발전을 택소노미 초안에선 뺏었습니다. 당연히 천연가스 업계에서 반발했겠죠. 그래서 1kWh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00g 이내면 포함해주자는 대체안이 논의됐는데요. 이게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합니다. EU 합동연구센터(JRC)에 따르면 1kWh당 LNG 발전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500g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입니다. 현재 논의가 되는 수준은 270g입니다. 이것도 쉽진 않겠죠.

다만 EU에서 논의되고 있는 건 LNG 발전이 아니라 LNG 열병합 발전이라고 합니다. 열병합발전소는 전기와 증기를 만들어 내는 발전인데, 전기만 생산하는 발전보다는 탄소 배출량이 적습니다. 쉽게 말하면 굉장히 협소한 수준에서 LNG 발전을 인정하겠다는 겁니다.

우리는 사정이 다릅니다. 우선 K-택소노미는 초안엔 바이오가스와 천연가스를 섞어 1kWh당 탄소 배출이 100g 이하면 녹색 경제활동으로 인정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에너지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반대했죠. 산자부는 LNG 발전은 무조건 넣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현재는 1kWh당 탄소 배출 기준을 320g으로 놓고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결론이 어떻게 나올지는 최종안이 나와봐야 합니다.

산업부가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지난해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2020년 41.3GW인 LNG 발전의 설비용량을 2034년에 58.1GW까지 늘리겠다고 했죠. 40%가량 늘어납니다. K-택소노미에서 LNG 발전이 빠지면 새 발전소를 짓기가 어렵게 됩니다. 최근에 한국전력의 발전자회사들이 LNG 발전소 건설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줄줄이 수요예측에서 미달이 됐습니다.

LNG 발전소를 짓지 못하면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탈원전과 탈석탄 정책을 밀어붙였죠. 핵심은 기저발전원인 원전과 석탄발전을 가스발전으로 대체하겠다는 겁니다. 태양광이나 풍력을 기상 여건 때문에 일정하게 전기를 생산할 수 없습니다. 그걸 담당하는 게 기저발전원입니다. LNG 발전이 빠지면 현실적인 대안이 아예 사라진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택소노미에서 화석연료 발전을 ‘그레이존(Grey-zone)’으로 두는 나라도 있습니다. 일본이 대표적인데요. 일본은 아예 택소노미가 아니라 ‘전환금융지침(Transition Finance Guidance)’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석탄 화력과 LNG 발전을 ‘브라운 택소노미(Brown Taxonomy)’로 구분한 뒤 탄소포집·저장(CCS)이나 탄소포집·활용(CCU) 기술로 넷제로(net-zero)를 달성하겠다는 겁니다. 말레이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EU와 우리나라는 택소노미 분류 기준이 더 엄격합니다. 일본이 녹색 경제활동으로 분류한 ‘그레이 수소’도 K-택소노미에선 제외됐습니다. 그레이 수소는 석탄이나 LNG에서 수소를 뽑아내는 건데요. 수소 1kg을 만들어 내는 데 10kg의 탄소가 발생합니다. 이 때문에 환경친화적이지 않다는 거죠. 다만 탄소 배출을 일정 기준 이하로 낮추면 ‘블루 수소’로 분류해서 녹색 경제활동을 인정하자는 논의가 지금 진행 중입니다. 일본과 달리 CCS나 CCU도 녹색기술이 아닙니다. CCS는 사실 탄소를 없애는 기술이 아닙니다. 탄소를 1톤(t) 저장하려면, 여기에서 또 탄소가 0.5t가량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택소노미가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EU가 택소노미를 확정하면 그게 국제표준이 됩니다. 예를 들어 EU가 2026년부터 탄소 국경세를 부과하기로 했죠. 철강이나 알루미늄, 시멘트, 전기, 비료 등 5개 품목이 대상입니다. 탄소 국경세를 피하려면 저탄소로 철강과 알루미늄, 시멘트를 만들어야 하는데요. (그렇지 않으면 탄소배출권의 가격만큼 세금을 내야 합니다.) 이 기준이 택소노미에 들어가 있습니다. K-택소노미 최종안에도 이 기준이 포함될 예정입니다.

또 자본시장도 기후변화 문제를 무엇보다 앞세우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린워싱을 막아달라는 요청을 각국 정부에 했던 건데요. K-택소노미 기준을 적용하면 지금까지 발행한 그린본드 중 절반이 그린워싱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국회가 지난 3월 ‘환경 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을 개정했던 것도 이런 이유이기도 합니다. 택소노미 도입은 이 법에 따른 절차입니다.

김상훈 언더스탠딩 기자 ksh-3protv@outloo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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