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실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공식화했습니다. CPTPP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Mega FTA) 중 개방도 수준이 가장 높은 관세동맹입니다. 2013년 정부가 한번 가입을 타진했다가 접은 바 있죠.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미국이 이끄는 TPP를 놓고 저울질을 하다, 결국 RCEP을 선택한 건데요. 뒤늦게, 그리고 갑자기 CPTPP 가입을 서두르는 이유는 뭘까요?
거두절미하고, 바로 대만 때문입니다. 대만이 지난 9월 중국과 나란히 CPTPP 가입 신청서를 냈는데요. 중국도 아니고, 왜 대만이 문제일까요. 일단 배경을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대만의 중국의 ‘방해 공작(?)’으로 지금껏 맺은 FTA가 11개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뉴질랜드나 싱가포르 정도가 주요 국가죠. 파나마나 과테말라, 마셜제도 같은 FTA를 굳이 맺을 필요가 없는 나라들이 대부분입니다. 니카라과는 최근 대만과 FTA를 폐기하고 단교한 뒤 중국과 수교하기도 했죠.
대만과 달리 우리나라는 FTA 모범국가입니다. 발효된 협정만 67개국 17개죠. 협상을 타결한 뒤 발효를 기다리는 협정도 5개입니다. 대만이 FTA 무대에서 떨어져 있었던 만큼 반사이익을 크게 봤다는 얘기입니다.
영국 연구기관인 옥스퍼드이코노믹스가 2017년 이런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죠. 한국과 대만의 수출경합도는 0.67. 수출경합도가 1이면 두 나라의 수출 품목이 완전히 겹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100중 67개가 겹친다는 건데요. 한데 2010년에서 2016년까지 수출 성적표는 판이합니다. 한국의 연평균 수출 증가율은 5.3%, 대만은 1.4%였습니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원인으로 두 가지를 지목합니다. 우선 대만엔 삼성이나 현대·기아차 같은 글로벌 공급망을 갖춘 대기업이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FTA입니다. 사실 대기업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게 FTA라고 하면, 결국 FTA가 성적을 갈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대만이 순식간에 자유무역의 중심 무대인 CPTPP로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CPTPP는 개방 수준이 가장 높은 메가 FTA죠.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3%(2018년 기준)가량으로 RCEP(28.9%)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개방도가 96%죠. 100개 품목이 있으면 96개 품목의 관세를 철폐한다는 얘깁니다. RCEP도 92%지만, 일괄타결이 아닌 순차적 개방이라 그 수준까지 가려면 꽤 많은 시일이 필요합니다. 여타 다른 무역 규범 등은 비교할 바도 안 됩니다. 무역 수준을 놓고 비교하면 CPTPP는 다 큰 대학생, RCEP는 이제 막 뭘 배우기 시작하는 초등학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밌는 사실 하나. G2 모두와 FTA를 맺고 있는 건 한국이지만, G2에 가장 많은 수출을 하는 국가는 2018년 기준으로 대만입니다. 대만이 전 세계 시장의 13%인 CPTPP에 들어가면, 그래서 무관세 혜택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한국 수출시장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겠죠. 정부가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CPTPP 회원국 상당수와 이미 양자 간 FTA와 체결돼 있긴 합니다. 양자 FTA를 맺지 않은 나라는 일본과 멕시코,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4개국뿐입니다. 일본과 말레이시아, 브루나이는 최근 비준한 RCEP이 발효되면 느슨하긴 하지만 FTA로 연결이 되긴 합니다.
멕시코랑 FTA 체결하면 끝나는 문제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특정 품목의 관세를 철폐하겠다고 도장을 쾅 찍는다고 모두 관세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한다고 해보죠. 부품이나 원자재 등을 다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와서, 한국에선 단순 조립만 해서 파는 것까지 특혜관세 혜택을 줄 순 없겠죠?
그래서 FTA 협상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원산지규정을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원자재나 부품의 원산지를 따져보고, 일정 기준을 만족해야 관세를 낮춰주는 역내 가공상품으로 인정해주는 거죠.
메가 FTA가 양자 FTA와 비교해서 갖는 강점이 이겁니다. 바로 강력한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다는 거죠. 전문용어로는 누적 원산지 조항을 인정해주는 건데요. 대만이 노리는 것도 이겁니다. 전기차를 예로 들어볼까요. 아이폰을 위탁생산하는 대만 폭스콘이 최근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죠. 폭스콘이 베트남에 공장을 세워놓고, 독일 같은 유럽에서 부품을 수입해 완제품을 만든 뒤 일본에 판다고 가정을 해보죠. CPTPP는 일정 기준만 맞으면 이걸 대만 기업이 만든 상품으로 인정을 해줍니다.
RCEP 회원국에 그림의 떡이죠. 현대기아차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RCEP도 CPTPP처럼 누적 원산지 조항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부품 등은 인정해주지 않는 ‘지역 누적’ 원산지를 기준으로 합니다. 한국 기업과 비교해 대만이 훨씬 더 강력한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쉽게 FTA를 소개팅, 메가 FTA를 단체 미팅이라고 비유해 보죠. CPTPP는 옆 테이블로 가서도 얘기할 수 있는 좀 더 자유로운, RCEP는 골방에 갇힌 그룹들끼리만 교류가 가능한 미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건은 대만이 CPTPP 가입에 성공하느냐죠. 중국이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란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중국은 CPTPP에 가입이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신청서를 냈죠. 불가능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중국이 FTA를 많이 맺긴 했지만, 개방에는 매우 부정적인 나라입니다. 한중 FTA 2015년에 발효했지만, 서비스 시장 등 추가개방을 위해 미뤄놨던 2단계 협상을 아직도 시작을 못 했습니다. 주도했던 RCEP도 개방 수준이 낮다고 했죠. 개방도가 최고 수준인 CPTPP에 들어오려면, 국내 제도를 여기에 다 맞춰야 하는데요. 그럴 가능성이 ‘제로(0)’에 수렴한다는 거죠.
또 회원국 11개가 만장일치로 찬성을 해야 합니다. 일본은 당연히 반대하겠죠. 캐나다와 멕시코도 찬성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USMCA로 개정하면서 욱여넣은 조항이 하나 있습니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비시장경제지위 국가와 FTA를 맺으면, USMCA는 자동탈퇴해야 합니다. 중국이 대표적인 비시장경제지위 국가죠.
중국이 신청서를 낸 이유는 일종의 전략적 선택입니다. CPTPP 회원국들에 이런 엄포를 놓을 수 있죠. 대만은 되는 데 왜 중국은 안 되냐. 미국의 우방인 일본이나 캐나다, 멕시코는 대만의 가입을 허락한 순 있겠죠. 하지만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베트남 같은 국가는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이 절대 놓지 않는 원칙 중 하나가 ‘하나의 중국’이죠. 대만이 중국에서 멀어지는 걸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대만은 매우 적극적입니다. 최근에 일본이 대만 TSMC에서 막대한 보조금을 주면서 공장을 유치했죠. 중국에 있던 대만 기업의 공장도 많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폭스콘도 최근에 중국에서 철수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기도 하죠.
대만과 달리 우리나라는 가입이 좀 더 쉽습니다. 우선 미국이 TPP에서 빠져있어서 중국 눈치를 볼 필요가 없죠. 중국도 가입신청을 했고요. 외교적으로 감내해야 할 리스크가 전혀 없다는 얘깁니다. CPTPP 의장국도 최근 일본에서 싱가포르로 바뀌었습니다.
다만 일본이 문제입니다. 벌써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 문제를 걸고넘어졌죠. 하지만 일본도 실리적으로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가입하는 게 더 좋습니다. 우리나라의 대일본 무역적자는 매우 큽니다. 소재나 부품, 장비 등을 한국에 더 많이 팔아먹을 수 있죠. 2013년 한국이 TPP 가입을 저울질하다 놓은 표면적 이유도, 대일본 무역적자 때문이었습니다.
되레 가장 큰 장애물 국내에 있습니다. 한국은 FTA 협상을 가장 잘하는 나라로 꼽힙니다. 그래서 CPTPP 회원국들과 맺은 양자 FTA에서 농축산물 분야 개방을 최대한 막아놨습니다. CPTPP에 가입하려면 이걸 다 개방해야 합니다. 농업 분야 개방은 화약고죠. 한미 FTA 개정 당시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농업 분야를 ‘레드라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요.
정부가 가입을 공식화한 게 아니라, ‘가입신청’을 공식화하겠다고 표현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가입을 공식화하면 통상절차법에 따른 절차를 진행해야 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신청서를 제출하겠다고 국회에 보고하고, 이후 농업단체 등 이해관계자 공청회도 거쳐야 합니다. 이런 일련의 절차를 진행하면 당연히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겠죠. 이 때문에 여당에서 신청서 제출을 대선 이후로 미루자고 정부를 압박했던 겁니다.
결국 새로 정부가 들어서면 이런 갈등이 본격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기 정권이 초기에 이런 정치적 부담을 이겨내고 CPTPP 가입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