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지난 18일 아이폰 운영체제(iOS)를 업데이트하면서 ‘디지털 유산 프로그램(Digital Legacy Program)’을 도입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에 가장 엄격했던 애플이, 계정 안의 사용자 정보에 대한 ‘상속’을 허용하기로 한 건데요. 당연히 내 것으로 생각했던 계정 안의 데이터가 내 것이 아니라는 게 황당할 수 있는데요. 도대체 디지털 유산이란 게 뭘까요.
디지털 유산이 뭔지 감을 잡을 수 있는 사례를 하나 들겠습니다. 대표적 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MMORPG)인 리니지에 집행검이란 아이템이 있습니다. 가장 비싼 게임 아이템 중 하나죠. 여덟 번 강화에 성공한 집행검은 3억 원가량에 거래됩니다. 만약에 아이템베이에서 이 집행검을 샀다면, 이 집행검은 누구 소유일까요? 당연히 구매한 사람 소유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NC소프트 약관에 따르면 집행검을 비롯해 모든 게임 아이템은 회사의 소유입니다. 리니지뿐만 아니라 대부분 게임이 마찬가지인데요.
왜 이럴까요? 게임 아이템은 우리가 사고팔 수 있다는 거 때문에 ‘물건’으로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이버상에 있는 단순한 데이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내 것 같지만, 내 것이 아닙니다. 민법은 디지털 데이터를 재산으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재산권이 인정되는 건 물권과 채권뿐입니다. 물건은 물리적 실체가 있는,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유체물을 말합니다. 현실 세계에 있고, 그래서 배타적인 점유가 가능한 물체를 물건이라고 합니다. 채권은 계약서가 있는 금융상품이나 주식을 말하죠. (물론 우리가 쓰는 전기도 민법에선 물건으로 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한데 이건 전기 도둑 잡겠다고 형법상에 재물 개념을 넣으면서 포함이 된 거라 예외라고 봐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집행검은 물건이 아니죠. 그래서 물리적 서버에 담겨 있는 데이터로 인식하고, 그래서 주인이 NC소프트가 되는 겁니다. (다만 NC소프트는 자사 정책으로 집행검 같은 아이템의 거래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상속은 아니지만, 사용자가 사망하면 유족에게 계정을 이전해주기도 합니다. 재산상의 가치가 있다는 NC소프트의 ‘예외적’ 판단 때문이죠.)
이처럼 법적으론 내 소유가 아니지만, 사실상 내 것처럼 인식되는 데이터를 유족에게 상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디지털 유산입니다. 게임 아이템뿐만 아니라 네이버나 구글 같은 포털,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내 계정에 쌓인 데이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해외 IT 기업이 디지털 유산을 인정했던 것은 꽤 오래됐습니다. 발단은 2004년입니다. 미국 군인이었던 저스틴 엘즈워스가 이라크에 파병된 뒤 사망했는데, 유족이 야후에 평소 그가 사용했던 이메일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야후는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를 이를 거절했는데요. 결국 소송이 벌어졌고,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결론은 계정 접속이 아니라, 야후가 엘즈워스의 이메일 데이터를 CD에 복사해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났습니다. 이후 디지털 유산을 인정해주는 서비스가 많이 퍼지게 된 거죠.
구글도 2013년부터 ‘비활성 계정관리’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사용자가 사망해 계정이 비활성화되면, 사전에 사용자가 미리 지정해둔 사람에게 해당 계정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입니다. 다만 3개월이란 시간이 주어지고, 이후에는 계정이 삭제됩니다. 그 이전에 모든 데이터를 내려받아야 하는 거죠. 페이스북 등의 다른 IT 기업도 비슷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국 게임업체인 텐센트도 사망자 유언이 있으면 해당 계정의 자산을 특정인에게 양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릅니다. NC소프트 같은 특정 게임업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디지털 유산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네이버가 대표적입니다. 네이버는 계정정보를 유족이 요청하더라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유족이 손에 쥘 수 있는 건 공개된 블로그 등을 따로 모아서 백업한 데이터뿐입니다.
이유는 개인정보보호 때문입니다. 2010년에 희생된 천안함 장병의 유족이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이메일을 공개해달라고 했는데, 결국 법원에서 졌습니다. 우리 정보통신망법 등은 이용자 동의 없이는 타인에게 이용자 정보를 제공하지 못 하게 하고 있습니다. 2013년 무렵 국회에서 이를 바꾸기 위한 논의가 있었는데, 그때 반짝하고 말았습니다.
법이 이렇다 보니 개별 기업도 방법이 없는 거죠. 2014년 기업들이 인터넷자율정책기구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내놨는데요. 상속인에게 피상속인의 계정 접속권을 원칙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게 골자입니다. 다만 사이버머니나 게임 아이템과 같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데이터의 경우 관계 법령이나 약관에 따라 이를 상속인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예외를 두었습니다.
사실 디지털 유산 문제는 데이터의 소유권에 대한 법률체계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아직까진 데이터의 소유권을 어떻게, 어디까지 인정할지 정립이 돼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로 혼란도 생기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가상화폐와 대체불가토큰(NFT)이죠. 코인과 NFT도 우리가 자유롭게 거래하고 있으니, 당연히 법적인 소유권이 확립됐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획재정부가 내년부터 코인에 상속세와 양도세를 부과할 계획이었죠. 한데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과세가 1년 유예됐습니다. 당시 논리가 코인의 법적 지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코인은 현재 특정금융거래정보법상 ‘가상자산’으로 분류가 됩니다. 현실 세계에는 없는, 사이버상에만 있는 디지털 데이터죠. 다만 블록체인(분산원장)이라는 기술 때문에 특정인이 배타적으로 점유할 수 있죠. 일정 부분 민법상 소유권을 인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죠. 다만 금융상품으로 명확히 하기도 애매합니다. 그래서 소유권이 법률적으로 명확히 확립돼있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거래만 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습니다. 당장은 별 문제가 없을 수 있죠.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이런 문제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코인이 법률적 지위가 명확한 금융상품이라고 하면, 피상속인이 급작스럽게 사망해도 상속인에게 상속이 됩니다. 무슨 말이냐. 보통 금융상품은 상속인이 존재 여부를 몰라도 금융감독원의 상속인금융거래조회 서비스를 통해 파악할 수 있죠. 코인은 그게 안 됩니다. 지금은 상속인이 피상속인이 코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걸 정확히 인지하는 경우에 한 해 각 거래소나 수탁업체 등이 자발적으로 상속을 해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개인지갑에 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법률적 체계가 확립이 되더라도 지갑주소나 비밀번호를 모르면 상속이 불가능합니다.)
NFT는 심지어 가상자산인지도 애매합니다. 금융당국에서 투자와 지불수단이 되는 NFT는 특금법상 가상자산으로 볼 수 있다고 얘기한 정도죠. 최근 NFT 기술을 접목해 흥행에 성공한 P2E(Play to Earn) 게임들이 많이 있죠. 지금은 상속인이 계정 비밀번호를 모르면 상속할 방법이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 소유권에 대한 논의는 아직 첫걸음 수준입니다. 때문에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도 곤혹스러워하는데요.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oil)로 비견되기도 하죠. 소유권에 대한 법률체계도 하루빨리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데이터 소유권을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따라서 개인 차원에선 디지털 유산을 확보할 수 있느냐, 기업 단위에서는 마이데이터 서비스 같은 데이터를 활용한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느냐가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