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레고랜드 테마파크 사업을 벌이던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법원의 회생 절차를 신청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 사업에 돈을 빌려준 투자자들의 돈이 한동안 묶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GJC는 레고랜드와 주변을 개발하려는 강원도가 대주주로 참여해 만든 일종의 공기업입니다. 게다가 강원도가 지급보증까지 섰는데 이런 사달이 난 겁니다. 대체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폭탄선언한 강원도 "중도개발공사 회생 신청"
강원도 춘천에 레고랜드라는 테마파크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놀이시설인 레고랜드는 지난 5월부터 개장을 했고, 주변 땅은 아직 개발이 이뤄지는 중입니다. 강원중도개발(GJC)는 이 테마파크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공공기관입니다. 레고랜드와 주변 땅을 사들인 뒤, 기반 공사를 진행해 매각이나 임대를 줘 수익을 올리는 회사입니다. 신도시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LH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겁니다. 강원도가 지분의 44%, 레고랜드를 운영하는 멀린이 22%를 투자했습니다. 자본금은 221억원 정도입니다.
레고랜드 부지를 사 기반을 조성하려면 큰돈이 필요합니다. 자본금은 200억원이 조금 넘는 GJC의 돈만으로는 어림없습니다. 어디선가 빌려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강원중도개발은 ABCP(대출자산유동화증권)를 통해 돈을 조달했습니다. 중도개발은 우선 아이원1차라는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워 2023년 11월까지 2050억원을 빌리는 대출 계약을 맺은 뒤, 아이원1차는 이 대출 채권을 바탕으로 만든 ABCP를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방식입니다. 중도개발이나 SPC의 신용만으로는 돈을 빌리기 어려워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섰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2050억원을 ABCP 투자자에게 갚아주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사실상 강원도의 지급보증을 믿고 2050억원을 투자한 겁니다.
ABCP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리로 시장에서 손쉽게 자금을 빌릴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ABCP의 만기는 3개월이나 6개월 정도로 짧아 투자자들도 큰 부담이 없어 건설 프로젝트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대표적 수단입니다. 이 ABCP는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8월부터 이상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ABCP는 통상 만기 한 달 전쯤 연장 협상을 하고 합의가 되면 선취 이자를 지급하는 구조입니다. 강원도는 지난 8월 넉 달 치 이자를 지급하고 만기를 연장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다른 얘기를 합니다. 선취 이자를 받았지만 만기 연장에 합의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다른 조건이 만족되지 않았다며 중도 개발과 투자자들이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사이 강원도의 김진태 지사가 폭탄 발언을 하게 됩니다.
김 지사는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중도개발에 대해 법원의 회생 신청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투자자들과 맺은 약정에 따르면 회생 신청은 기한이익상실 이벤트로 간주됩니다. 실제 만기와 상관없이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강원중도개발은 9월29일 만기가 돌아온 ABCP를 갚지 않았고 결국 지난 5일 최종 부도가 확정됐습니다.
금융기관에서는 일반 기업이나 개인이 채무를 갚지 않으면 1) 빚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고 그래도 갚지 않는다면 2) 법원에 소송을 통해 가압류를 걸거나 경매를 통해 대출을 회수하게 됩니다. 지자체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칩니다.
일단 독촉을 한 뒤에도 갚지 않으면 소송을 통해 대출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다만,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한참 시간이 걸립니다. ◇강원도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나
강원도는 보증채무를 책임지겠지만, 당장 빚을 갚을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일단 법원이 회생을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않을지 지켜본 뒤 움직이겠다는 생각입니다.
김진태 강원지사는 "강원도가 안고 있는 2050억원의 보증 부담에서 벗어나는 게 회생 신청 목적"이라고 밝혔습니다. 강원도 입장에서는 중도개발이 내년 11월 만기까지 ABCP를 차환발행하다 원리금 못 갚으면 대신 갚아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계산기를 두드려 봤더니 중도개발 사업이 시원찮아 이런 상황이 눈에 뻔하다는 겁니다.
중도개발공사는 보유한 레고랜드 주변 땅 41만7천㎡ 가운데 36만㎡를 매각했습니다.지금 5만7천㎡(14%)가 남아 있습니다. 매각한 땅 가운데 잔금이 들어온 게 3% 정도입니다. 나머지 잔금은 언제 들어올지도 모를 정도로 부실한 계약을 맺었다는 겁니다. 중도개발공사가 갖고 있는 자산을 팔아도 빚도 다 못 갚고 400억원 정도가 부족하는 결론입니다. 법원이 회생을 받아들이면 채무도 탕감 받고 기존 토지 매매계약이 이뤄진 땅도 원금만 돌려주고 계약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잔금도 못 받은 땅을 회수해 제값 받고 팔면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겁니다. 중도개발공사가 1차적으로 빚을 갚고, 남는 그래도 못 갚는 빚은 강원도가 책임지겠다는 차원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빌려준 금융사의 주장은 전혀 다릅니다. 레고랜드 주변 땅 수요는 많다는 겁니다. 춘천 시내 상업용지와 비교해서 가격 경쟁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잔금 입금이 3%밖에 안됐다고 하는 것도 지난 2021년말 기준이며, 올 들어 중도금과 잔금 입금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니 프로젝트가 대규모 적자를 봐 회생에 돌입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회생신청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레고랜드 사업은 민주당 소속의 전임 최문순 지사의 역점 사업입니다. 국민의힘 소속인 현재 김 지사가 이 프로젝트가 빚더미 위에 건설된 사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공개해 털어내려는 일종의 ‘빅배스(Big Bath)’를 단행한 것이란 해석도 있습니다. 빅배스는 묵은 때를 모두 씻어내는 ‘큰 목욕’을 하는 것처럼 새로 취임한 CEO가 전임자 시절 쌓인 부실을 한꺼번에 털어낸다는 뜻입니다.
◇ "내 돈 받을 수 있을까?"속타는 투자자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속타는 것은 투자자들입니다. ABCP는 총 2050억원어치를 팔았습니다. 이거 BNK증권이 도매로 한꺼번에 사 와서 7개 증권사에 쪼개서 팔았습니다. 증권사들은 신탁 혹은 랩 계정을 통해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탁이나 랩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은 대부분 기관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부는 개인자금이 들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또 나머지 100억원에서 200억원은 법인과 개인이 투자하는 머니마켓펀드(MMF)에 있어서 개인 손실도 예상이 됩니다. 예를 들어 자산운용사가 개인자금이 투자된 MMF에 ABCP를 편입했다면 개인들도 손실을 볼 가능성이 있는 셈이죠. 지금 금감원에서 ABCP 판매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ABCP의 구조나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을 했는지 파악하겠다는 겁니다.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떼일 가능성이 크지는 않습니다. 강원도의 지급보증 성격을 보면 이런 전망이 가능합니다. 채무보증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우선 연대보증처럼 항변권이 없는 보증이 있습니다. 이런 보증을 선 경우라면 대출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가 빚을 안 갚으면 무조건 보증을 선 사람이 갚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일반적 지급보증이 있습니다. 이 경우라면 약간의 항변권이 있습니다. 즉 회생에 들어가서 먼저 빚 정리를 하고 그래도 갚아야 할 돈이 있으면 보증을 선 사람이 대신 갚는 방식입니다. 강원도의 보증은 사살 상의 연대보증 성격이 강합니다. 즉 강원중도개발이 대출을 갚지 못하면 그 즉시 강원도가 갚을 의무가 생기는 보증이라는 겁니다.
ABCP의 약정을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회생이나 파산에 들어가도 강원도가 2050억원을 갚는다는 조건이 붙어있습니다. 이 약정은 강원도 의회의 승인까지 받았습니다. 강원도 역시 "채무자 회생법에 따른 회생 신청이니 중도공사의 채무가 줄어들더라도 도의 보증책임은 줄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갚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습니다. 강원도는 일단 회생 절차 결정 이전까지는 갚을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회생이 받아들여지면 법원의 결정과 관리에 따라 대출 변제가 이뤄질 것 같고, 회생이 거부된다고 해도 원래 대출금 만기가 내년 11월28일까지였으니 회생에 돌입하건 안 하건 이때까지는 갚도록 노력하겠다는 게 공식 입장입니다. ABCP 투자자들은 강원도가 돈을 갚기 전까지는 한동안 투자 자금이 묶이게 되는 셈입니다. 금융권에서는 최종부도가 났으니 9월 29일부터 연체가 되고 있고 연체이자가 붙고 있습니다. 현재 중도개발공사는 SPC 와 연 5.1%정도의 이자를 부담하는데 연체이자까지 포함하면 연 8% 이자가 쌓이고 있습니다.
◇강원도發 폭탄...불안한 채권시장
레고랜드 ABCP 사태가 터지면서 채권시장의 불안감 확산하고 있습니다. ABCP 만기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이내 단기자금시장의 상황을 보여주는 하루짜리 환매조건부채권(RP) 금리는 3.29%까지 급등했습니다. 하루 새 0.66%포인트나 튄 겁니다.
지자체 신용등급은 국가신용등급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이번에 ABCP 부도 사태가 나면서 이런 판단의 근거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죠. 지난 6월 말 기준 지자체 신용보강을 받아 발행된 유동화증권은 26건으로 발행잔액은 1조원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그동안 지자체가 채무 보증을 서는 경우 신용등급 중 최고 등급인 A1이 부여됐지만, 앞으로는 평가 기준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