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관계가 깨끗하다고 믿고 집을 피해자는 졸지에 집이 경매로 잃을 처지에 내몰린 겁니다. 등기부등본을 믿고 집을 산 결과입니다. 우리는 부동산을 사고 팔 때 등기부등본을 굳게 믿습니다. 하지만 법원에서 등기부등본의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공신력이란 등기부가 실제 사실과 다르더라도 부동산을 산 사람이 이를 몰랐다면 유효한 등기로 간주해 준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등기부등본과 달리 진짜 주인이 있다면 주인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인정하는 게 대법원의 판례입니다. 등기부등본을 믿고 거래를 했다가 A씨처럼 뒤늦게 뒤통수를 맞은 일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매년 20건 안팎의 이런 부실등기 사건이 벌어지며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고 있습니다. ◇등기소는 과연 책임이 없나 등기와 관련돼 피해를 입을 경우 정부 차원에서 피해를 보전해 주는 보상 제도는 없습니다. 위조 등기의 피해가 발생해도 법원 등기소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등기 서류를 심사하는데 크게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실질적 심사주의입니다. 권리의 실체관계와 효력까지 전부조사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데 비용도 많이 들고 등기를 신청해서 승인할 때까지 무지하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두 번째는 형식적 심사주의입니다. 등기를 신청할 때 법령이 정한 절차와 형식 요건을 갖췄는 지 심사를 하는 것입니다. 등기관이 요청하는 서류 예를 들어 위임장 인감증명서 등 서류와 절차에 하자가 없으면 등기절차 바로 진행됩니다. 절차가 간단하고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 게 장점입니다. 우리나라는 부동산 등기를 심사할 때 형식적 요건만 갖추면 등기를 내주게끔 돼 있습니다. 등기공무원이 실질적인 권리관계에 부합하는지 심사를 할 권한이 없으니까 책임을 묻기 힘들다는 겁니다. (전 집주인은 인천의 한 법무사사무실에서 은행 명의의 위임장과 법인 인감을 위조해 서류를 꾸몄으며, 이를 서울 남부지법 등기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은행의 부실한 대출 관리 책임을 얘기하는 분도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뉴스에 등장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한 은행에서 돈을 빌렸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에게 대출을 내줄 때 제대로 심사를 했으면 전 집주인의 대출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테고 결과적으로 사기를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은행도 피해자라는 입장입니다. 법원도 속아서 등기부등본을 깨끗하게 만들어 줬고, 은행도 등기를 바탕으로 대출을 해 준줬을 뿐이라는 것이죠. 이 사건 이후 이 은행은 물권(주택) 별로 대출이 있는 지 여부도 살펴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 시스템을 일찍 갖췄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듭니다. 하지만 근본적 문제는 법원이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죠. ◇우리나라는 등기의 공신력을 왜 인정하지 않나 이 문제는 1950년 광복 직후까지 거슬러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국회가 민법을 만들면서 부동산 소유권을 이전하려면 거래에 동의할 뿐 아니라 등기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넣으며 등기부의 공신력을 인정하느냐 갖고 논의를 했습니다. 등기가 사실과 달라도 등기를 믿고 산 사람을 보호해 줘야 하는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등기부등본을 믿을 수 있느냐는 근본적 의문이 컸던 시기였습니다. 일제 시대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땅의 소유권 정리가 제대로 안됐고 지적부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등기부등본을 믿으려면 등기부가 정확한지 꼼꼼히 심사를 해야 합니다. 많은 등기공무원을 유지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당시 나라 상황상 이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것도 영향을 줬습니다. 이런 이유로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게 된 겁니다.
이후 여러 차례 민법을 개정하면서 등기의 공신력을 부여할 지 여부를 논의했으나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실제 권리관계와 부동산의 현황이 일치하느냐를 보려면 전국 토지를 다 조사해야 하는데, 막대한 예산이 들고 이런 저런 비용을 들여서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게 해서 얻게 되는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서입니다.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나 해외 주요 나라에서는 공신력을 인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독일은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는 방법으로 공증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부실 등기가 발생하면 등기기관이 손해를 배상합니다. 미국은 공신력은 인정하지 않는데 권원 보험이 발달했습니다. 보험계약을 맺고 권리의 하자가 생기면 보상해 주는 보험입니다. 또 토렌스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부실 등기를 보상하기 위한 기금이 마련돼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형식적 심사주의를 채택하면서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국가가 운용하는 등기제도를 신뢰하고 거래하고 있으나 문제가 터지면 등기의 공신력이 인정되지 않는 현행 제도 하에서도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으니, 이를 국가가 보상해 주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등기공무원의 실질 심사를 도입하면 위조등기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위조등기 피해 막을 방법은
현재 정부 차원에서 위조나 부실이나 위조등기 피해를 보상하지 않습니다. 피해자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민간 보험사에서 이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부동산권리보험을 팔고 있습니다. 등기상 권리관계가 일치하지 않거나 이중매매, 문서위조 등의 피해를 입으면 손해를 보상해주는 겁니다.
일반인이 가입할 수 있는 권리 보험은 하나손보의 '부동산권리보험(일반소유권용)'과 외국계전업손해보험사인 퍼스트어메리칸권원보험 한국지점의 '퍼스트주거용권리보험' 정도가 있습니다.
하나손보의 경우 주택가격 3억원 기준으로 보험료 15만3800원, 등기수수료 30만5000정도 해서 총 45만원이 듭니다. 이 돈을 내면 소유권 매매대금 보장, 소유권 이전등기, 법무사 과실 피해까지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집을 구매하고 등기를 할 때 법무사 수수료를 한 50만원 정도 내야하는데, 부동산권리보험을 가입하는 게 더 저렴할 수 있습니다.
일단 계약서를 쓴 뒤부터 잔금납입 일주일 전까지 보험 가입이 가능합니다. 보험 계약금액 범위 내에서 실제 손실에 대해 보상을 해줍니다. 최대 보상금액은 20억원 입니다.
부동산권리보험 가입건수는 미미합니다. 우선 이런 보험 자체를 잘 모르는 데다 등기 사기의 피해자가 되겠느냐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