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6-04-11 (토)

은행이 찍은 채권이 휴지조각이 되는 이유

  • 입력 2023-03-30 16:37
  • 장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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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로벌 금융시장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파산 위기를 겪던 유럽의 대형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가 UBS에 합병되는 과정에서 코코본드(AT1)가 전부 상각이 된 게 결정적 영향을 줬습니다. 투자자들은 눈앞에서 20조원이 넘는 채권이 한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변했습니다. 안전한 줄 알았던 채권이 순식간에 폭탄으로 변한 겁니다. 투자자들이 코코본드를 당분간 쳐다보지 않을가능성이 커진 것이죠. 그러면서 코코본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대형은행들도 위험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시장을 엄습한 겁니다. 코코본드가 대체 뭐길래 글로벌 금융시장을 이렇게 뒤흔드는 것일까요. 코코본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코코본드가 대체 뭔가

코코본드는 조건부자본증권(Contingency Convertible Bond)의 앞 글자를 딴 말입니다. 본드라는 단어가 붙었으니 채권입니다. 그런데 독특합니다. 채권의 만기가 없거나(영구채) 매우 길기 때문입니다. 돈을 빌렸는데 영원히 갚지 않아도 된다면 이 돈은 빚일까요 내 돈일까요. 애매합니다. 그래서 코코본드는 채권이긴 한데 주식의 성격이 많이 가미된 신종자본증권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신종자본증권이 주식과 다른 점은 이론적으로는 만기가 없지만 콜옵션, 즉 발행 금융기관이 일정한 시기에 채권을 갚아버릴 옵션이 붙어있고, 대체적으로 스텝 업(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금리가 급격히 올라가는 방식) 조항이 있습니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금리부담이 급격히 커지기 때문에 첫 콜옵션 행사일에 웬만하면 옵션을 행사해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주도록 구조를 짠 겁니다. 5년이나 10년만기 은행채와 비슷한 상품인 것이죠.

코코본드는 다른 신종자본증권보다 주식의 성격이 훨씬 강합니다. 가장 큰 특징은 특정한 조건이 되면 상각 혹은 주식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무시무시한 겁니다. 어떤 이벤트가 발생하면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버리거나 아예 휴지조각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스텝업 조항도 없습니다. 즉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아도 처음 약속한 금리를 그대로 가져갈 수 있는 겁니다. 투자자로서는 여차하면 만기 때까지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는 리스크가 있는겁니다. (관례적으로 첫 콜옵션 행사일에 상환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입니다. 콜 하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영원히 돈을 빌려주는 셈이니 코코본드를 사지 않을테니까요. ) 코코본드가 채권이긴 한데 자본에 상당히 가깝게 설계를 한 겁니다. 그래서 코코본드를 찍어서 돈을 조달하면 은행의 자본(보통주)으로 인정해 줍니다.

빌린 돈을 어떻게 내 돈(자본)으로 인정해 주나

코코본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등장한 자본조달 방식입니다. 당시 대형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자 혈세를 투입해서 살려줬잖아요. 그런데 은행이 살아나자 은행 임직원들이 막대한 보너스, 투자자들은 배당금을 나눠가져갔습니다. 도덕적 해이죠. 그러다 보니 혈세를 투입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여론이 확산했습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문구 기억하시죠!)

금융당국은 바젤3라는 엄격한 자본규제를 도입했습니다. 은행이 망할 위기에 처하면 주주나 투자자들 돈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규제에 반영한 것이죠. 규제의 핵심은 위기가 오면 주주와 투자자가 손실을 먼저 부담할 수 있도록 자본을 충분히 쌓아두라는 겁니다. 이 돈으로 불이 나면(위기가 오면) 불 끄는 데 쓰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은행은 위기 때에 대비해 엄격한 자본 비율을 맞춰야 하는데요. 은행 주주들의 돈인 보통주로만 규제비율을 맞추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기존 주주들이 돈을 더 부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생각해낸 게 코코본드입니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도 자기자본으로 인정을 받았는데, 위기 상황에서도 손실을 크게 떠 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반적 상황에서는 채권이지만 금융기관이 흔들리면(불이 나면) 바로 소방수로 투입할 수 있는(보통주 전환 혹은 상각) 조건을 붙이는 대신 기본자본으로 인정해달라는 겁니다. 이 외에도 특정 상황이 되면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조건도 붙습니다.(일반적 채권은 이자를 갚지 못하면 디폴트입니다. 이 역시 자본적 성격을 많이 가미한 사례입니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어쨌건 위기가 오면 바로 투입할 수 돈이 생기니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주주 입장에서는 자기 돈 덜 들어가는 데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은행이 발행하는 채권인데 상각이나 전환 조건이 붙는 대신 은행채보다 높은 이자를 주니 나쁘지 않은 투자처입니다. 같은 은행이 발행한 선순위 채권과 비교하면 금리가 약 2~3% 포인트 높습니다. 이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코코본드가 도입이 된 겁니다. 2009년 영국 로이드은행이 처음 발행했고, 한국에서는 2014년 JB금융지주가 3000억원 규모 코코본드를 처음 찍었습니다. 현재 유럽에서만 코코본드 시장규모가 2750억유로로 커졌습니다. 유럽은 코코본드로 조달한 돈이 전체 자기자본의 16% 내외, 우리나라는 5~10% 입니다.

코코본드는 어떨 때 상각되거나 주식으로 전환되나

상각 조건은 나라마다 채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공통적 조건은 1)은행의 자본 비율이 특정 비율을 밑돌거나 2) 정부(금융당국)이 재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정도입니다. 유럽 쪽으로 가면 코코본드를 다른 상황에서도 상각할 수 있는 계약(Covenant) 조건이 붙기도 하는데요. CS가 발행한 코코본드에는 위기 상황(Viability Event)에서 전액 영구상각할 수 있다는 문구도 있습니다.

CS가 발행한 코코본드에는

1) 그룹의 연결 CET1 비율이 7% 이하로 떨어지거나

2) 스위스 금융시장감독당국(FINMA)이 상각이 필요하다고 결정하거나

3)크레디트스위스 그룹이 파산하거나 빚을 갚지 못하거나, 이런 상황을 막으려 공공의 지원이 필요로 하거나 등의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스위스 당국이 CS가 UBS로 합병하는 과정에서 유동성 지원을 했는데, 이게 계약상 위기 상황(Viability Event)이 벌어진 것으로 해석한 겁니다. 관련 규정에 FINMA(스위스금융감독청)은 차입자 및 금융그룹에 코코본드 상각을 요청할 수 있도록 법에도 정해뒀습니다.

계약대로 했다는데 시장에서 불안감이 커진 이유는

보통 금융회사의 위기가 오면 주주들의 돈인 잉여금부터 투입을 합니다. 이후 주주나 금융당국이 증자 혹은 유동성을 투입하는 등의 노력을 하다가 안되면 문을 닫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주주의 주식(보통주) 자본부터 손실을 메우고 그래도 부족하면 채권자에게도 부담을 지우는 방식입니다.

이번에 CS 코코본드 160억스위스프랑(22조원)어치가 상각되면서 투자자들은 돈을 다 날렸습니다. 그런데 주주들은 22.48주당 UBS AG 그룹의 지분 1주를 방식으로 투자금을 회수했습니다. 가장 먼저 주주의 돈으로 손실을 메운다는 금융시장의 상식과 어긋난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니 투자자들이 반발하는 것이죠. 코코본드 투자자들은 이미 소송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정부는 CS가 망해서 부실은행 정리하는 과정이 아니라 계속 장사하는 과정에서 계약상 코코본드 상각 트리거가 발생해 원칙대로 상각을 했다는 입장입니다. 코코본드 발행조건에 따라 원칙대로 행동해다는 겁니다.

동상이몽의 종말…불안감 커진 투자자들

사실 코코본드는 특정한 상황이 되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리스크가 있는 상품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이 풀리면서 이런 위험은 과소평가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계약 조건은 그래도 주주 돈부터 손실을 메우는 데 쓰는 게 시장 관례인데, 설마 채권자 돈부터 불 끄는 데 투입하겠어 하는 마음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설마 했던 그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겁니다.

코코본드가 위험하다는 징후는 그 전에도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코코본드는 특정한 상황에서 상각 조건도 붙어있지만 이자를 안 줘도 되는 조항도 있습니다. 이자를 못줄 정도로 건전성이 훼손됐을 때는 안 줘도 된다는 겁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코코본드는 자본의 성격이 강한 채권이기 때문입니다. 2016년 흔들리던 도이체방크가코코본드 이자를 주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시장이 흔들린 적이 있습니다.

2017년 스페인의 방코포풀라르(Banco Popular)가 발행한 코코본드도 상각이 된 적이 있는데, 당시엔 주식 투자금(자본)도 상각됐습니다.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실은행 정리 정책이 개혁되는 과정에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정리를 위해 정부와 감독당국에 광범위한 재량권이 부여됐습니다. 당국이 코코본드를 자본으로 인정해 준 것도 사실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면 재량권을 통해 상각 혹은 주식으로 전환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코본드는 굉장히 위험한 투자 상품인 셈이죠. 하지만 투자자들은 주주들의 돈을 먼저 투입할 것이란 시장의 관례를 너무 믿었던 겁니다. 동상이몽이 파국으로 끝난 것이죠.

투자자들이 간과했던 위험이 눈앞에서 벌어지니 시장도 놀랐습니다. 코코본드의 위험이 이렇게 크다는 게 알려지면서 코코본드의 조달금리가 치솟을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은행들은 코코본드로 자금을 많이 조달했는데 비용이 늘어나거나 혹시 상환을 제대로 못하는 은행이 나올까 노심초사한 것이죠. 그래서 코코본드로 자본을 조달한 은행의 주가가 박살이 난 겁니다.

국내 금융권의 영향은

국내 시중은행도 코코본드를 통해 자본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금융지주와 은행권의 코코본드 발행잔액은 약 30조원이 넘습니다. 전체 자기자본의 5~10% 내외입니다. 적지 않은 돈입니다. 당연히 불안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은행이 발행한 코코본드는 전부 상각형입니다. 하지만 상각 조건에 걸리기 힘든 구조입니다.

국내 코코본드 상각 처리 조건은

1) 금융산업구조조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된 경우입니다.

부실금융기관을 지정이 되려면

1) 거액의 금융사고 또는 부실여신으로 부채가 자본을 초과할 우려가 있다고 금감원장이 판단할 때

2) 자본 비율이 기준치 미만인 경우 이 두가지입니다.

CS 사례처럼 위기 상황(Viability Event)에서 상각할 수 있다는 조건은 아예 없습니다.

부실금융기관 평가대상 선정 기준은 총 자본 비율 4% 미만입니다. 국내은행의 자본적정성 수준(2022년 9월 말 15.5%)과 격차가 큽니다. 국민은행의 예를 들면 작년 3분기 국민은행 자산은 538조원, 부채는 505조원으로 둘의 차이인 자본 33조원이 손실흡수능력입니다.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기 위한 조건인 부채가 자산을 초과할 경우는 손실이 33조원이나 발생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스위스처럼 갑자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겁니다. 국내 은행권이 발행한 코코본드 금리가 위기 이후에도 크게 움직이지 않은 이유입니다.

코코본드로 자본조달하기는 어려워질 듯

은행권이 앞으로 코코본드 콜옵션 행사 일이 다가오면

1) 자기 돈으로 상환 2) 고금리를 부담하면서 시장서 조달(차환) 3) 콜옵션 미행사

이 세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 이후 코코본드 발행금리가 많이 뛰었습니다. 코코본드를 신규로 발행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상황이 된 겁니다. 코코본드 조달 규모가 적지 않은 금융회사는 부담이 클 겁니다. 자기 돈이 충분하지 않거나 조달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곳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시장 관례를 깨는 것이죠. 물론 대가가 따를 겁니다. 작년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 콜 상환 포기했을 때 완전히 불안한 회사로 찍혔던 게 대표적입니다. 이런 금융기관이 많이 나온다면 다시 시장이 출렁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우리나라 은행권은 자본이 넉넉한 편입니다. 신한금융지주는 다음 달 만기가 돌아오는 코코본드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보통 콜옵션을 행사하는데 지금처럼 예고를 하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시장이 불안하다는 뜻이겠죠. 동시에 신한은행은 돈이 넉넉해 큰 걱정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국내 은행권이 일단 자기 돈으로 코코본드를 상환하면서 시장이 안정되길 기다리는 전략을 쓸 것으로 보입니다.





장순원 언더스탠딩 기자 changsw5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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