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드디어 대한민국의 좌표를 찍었습니다. 최근 미국 의회 연설에서 우리나라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하겠다는 발언을 하면서인데요. 언론에 전해진 워딩은 이렇습니다.
“나의 행정부는 알래스카에서 세계 최대 규모 중 하나인 거대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일본, 한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각각 수조달러씩 투자하면서 우리의 파트너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정말 우리나라가 알래스카 LNG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로 했을까요? 아닙니다. 여러 채널을 통해, 그리고 여러 차례 협의를 한 건 사실입니다만.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한 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기정사실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 아예 못을 박아버렸는데요.
왜 그렇냐. 이날 연설에서 우리나라를 겨냥한 발언은 총 네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가 알래스카 가스전 투자이고. 두 번째는 미국 조선 부활에 협력하는 것. 이 둘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원하는 사안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가지는 한국이 미국보다 관세가 5배 높다는 것, 그리고 삼성과 하이닉스에 보조금을 주는 칩스법을 없애겠다는 것이었는데요. 누가 봐도 두 가지 요구사항 들어주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못 박았다는 표현을 쓴 겁니다.
오늘 ‘언더스탠딩(Understanding)’은 알래스카 LNG 개발 프로젝트입니다. 세계 최대 가스전이라면서? 그런 좋은 개발 기회를 굳이 우리나라에 양보한다고? 그 욕심쟁이 트럼프 대통령이? 도대체 어떤 프로젝트인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50년 전에 이미 발견했는데... 왜 지금껏 개발 못했을까?
일단 개발 프로젝트의 위치는 알래스카 최북단에 있는 프루도 베이란 곳입니다. 여기서 유전이 발견된 게 이미 1968년인데요. 그 이전에도 미국은 이곳에 기름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해군이 근처에 ‘미 해군 석유기지 4호(NPR)’로 구역 지정해 놓기도 했으니까요.
근데 첫 발견부터 대박이었죠. 매장량만 200억배럴이나 되고요. 발견 당시 북미에서 가장 큰 유전이었고. 또 전 세계에서 13번째로 큰 유전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동네엔 배가 못 들어갑니다. 북극해 인근이라 빙하가 떠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알래스카 남단의 발데즈란 곳까지 1,300㎞에 가까운 ‘알래스카 횡단 송유관(Trans-Alaska Pipeline System)’을 건설하고, 기름을 본토로 실어 날랐습니다. 1970년대 오일 쇼크를 이겨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죠. 기름 팔아서 번 돈으로 알래스카는 영구기금을 만들었고. 지금은 가장 완벽한 기본소득을 실현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죠.
여기서 기름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천연가스도 같이 나옵니다. 매장량만 100조입방피트. 우리나라가 1년에 쓰는 천연가스가 대량 2조입방피트가량 됩니다. 우리나라가 50년간 쓸 수 있는 천연가스가 묻혀 있다는 얘기. 미국에서도 4위에 이름을 올릴 만큼 천연가스가 많이 묻힌 유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미 1970년대부터 천연가스를 뽑아서 팔 방법을 궁리했습니다만. 문제는 석유 개발하는 것보다 돈이 두 배가량 더 들더란 겁니다. 프루도 베이엔 부동항도 못 지을뿐더러. 혹한의 기후 탓에 액화 터미널을 짓기도 힘듭니다. 자재 조달도, 건설도 힘들고. 어찌어찌 짓더라도 동력원 공급 등의 인프라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알래스카 남단으로 파이프라인을 잇고. 거기서 액화한 뒤, 배에 실어서 파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돈이 얼마나 드냐. 2008년 기준 추정치는 생산시설(GTP)에 50억달러, 파이프라인 건설에 80억달러, LNG 터미널에 140억달러. 모두 다 해서 사업비가 270억달러(39조원)였습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400억달러쯤 되는데요. 우리나라 돈으로 57조원이나 됩니다. 와우.
2013년 다시 셈을 해봤더니 이보다 더 들 거란 계산이 나옵니다. 생산시설(100억달러)과 파이프라인(120억달러), 액화 터미널(230억달러)을 더한 총사업비는 450억달러(65조원). 역시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610억달러(88조원)!! 엑슨모빌 등은 370~540억달러 정도 들 것으로 추정했고요. 이러니 개발하겠다고 달려드는 투자자가 없었던 겁니다.
●손익분기 가격이 12.3달러인데... 사갈 사람이 없다?
보다 못한 알래스카 주정부의 공기업인 알래스카 가스라인 개발공사(AGDC)가 2004년 개발에 나섭니다. 미국 정부가 대출 보증을 해주면서 리스크를 낮추는 사업 구조를 짜고요. 그럼에도 수년간 투자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전기가 마련된 건 2013년입니다. 엑슨모빌과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같은 오일 메이저가 투자자로 들어온 건데요. 유전을 발견한 지 무려 50여년만에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됩니다. 미국 최초의 LNG 수출 프로젝트인데요.
엑슨모빌 등이 왜 투자했냐. 당시 유가가 고공행진 했습니다. 당연히 천연가스 가격도 꽤 높았겠죠. 2013년 추정 알래스카 LNG의 손익분기 가격(Break Even Price)은 12.3달러.
미국이야 셰일혁명 때문에 천연가스 가격이 1MMBtu당 5달러 아래였지만. 유럽이 쓰는 천연가스의 가격은 12~13달러 수준이었고. 그다음으로 천연가스를 많이 쓰는 우리나라 일본 등 동북아시아에서 사다 쓰는 가격이 18달러를 오르내렸으니까요. 가까운 우리나라나 일본에 팔면 그래도 돈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지형적인 이점도 있습니다. 러시아가 동북아시아를 겨냥해서 개발하는 야말 LNG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북극해를 삥 돈 뒤 베링해협을 지나서 운송해야 합니다. 알래스카에서 운송하는 LNG가 운송비가 훨씬 덜 들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2014년무렵 천연가스 가격이 급락한 겁니다. 동북아시아의 도입 가격도 1MMBtu당 10달러 밑으로 떨어집니다. 캐내서 팔아봤자 손해만 나니. 결국 엑슨모빌 등도 이 사업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결국 발도 못 떼보고 실패. 그래서 프루도 베이 유전에서 나온 천연가스는, 고대로 땅속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묻혀 있는 원유를 뽑아 올리면 압력이 필요하고. 그 역할을 천연가스가 하고 있는 겁니다.
●트럼프가 되살려낸 알래스카 LNG
이 프로젝트를 한번 살려보겠다고 나선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2017년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에너지 정책의 골간을 다시 짰죠. 일단 탄소 줄이겠다는 도쿄 의정서에서 탈퇴. 그렇게 화석연료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미국 땅에 깔고 앉아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얼마인데. 이거 개발해도 충분히 쓰고, 남는 건 수출로 돈까지 벌 수 있는데. 왜 탄소 줄이겠다면 신재생 에너지를 쓰냐는 겁니다. 그렇기 알래스카의 북극 국립 야생 동물 보호구역(ANWR)을 개발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요. 2020년 연방규제위원회가 결국 알래스카 LNG 개발계획을 승인합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고민은 이랬습니다. 셰일 혁명으로 천연가스가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수출하려고 봤더니. 유럽 시장은 러시아가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로 장악하고 있었죠. 동북아시아는 호주와 동남아, 중동의 카타르 등에서 LNG를 사다 썼고요. 시장원리로는 치고 들어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화석연료 개발에 힘을 쏟은 건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시장원리로는 안 되겠지만. 정치적 지렛대를 활용하면 충분하다! 실제로 1기 행정부 당시 막대한 무역흑자를 보는 나라를 대상으로 LNG와 원유를 강매하다시피 팔았죠. 무역흑자를 줄이라는 명목으로요. 우리나라가 그 대열의 선두에 있었고요. 그렇게 시장을 뚫어놨으니. 알래스카 LNG 개발 프로젝트에도 서광이 비치는 듯했습니다.
찬물을 끼얹은 건 조 바이든 대통령. 2020년 취임한 뒤 알래스카 LNG 개발 프로젝트를 잠정 중단시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곳이 순록이 사는 야생 동물 보호구역이라는 게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공사를 하게 되면 당연히 생태계를 파괴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더구나 개발이 돈이 많이 들어 투자자 유치도 못 하는 사업이니. 탄소 감축에 진심인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선 헛짓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의 운명이 참 기구한 게.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다시 또 트럼프 행정부가 꾸려진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트럼프 대통령은 1호 행정명령으로 알래스카 LNG 개발 프로젝트를 재개했죠. 막고 있는 모든 장애물을 다 없애줄 테니. 빨리 개발하라고요. 그의 취임에 앞서 AGDC는 글렌파른이라는 미국의 에너지 개발회사와 투자협약도 체결했고요.